친한 친구에게서 혹시 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덜컥했다. 긴 시간 일을 해 학비를 마련해가며 힘들게 학업을 마쳤지만, 일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친구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공부해 보겠다고 병행한 일로 인해 예정보다 조금 늦게 졸업하게 됐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열심이 이제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이 되어버렸다며 많이 아쉬워하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문득 이 친구와 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자립이나 독립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어린 시절, 당시 지금의 우리 나이 즈음 됐을 ‘어린’ 어른들을 보며 도대체 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했었다고. 역시 뭐든 한 발짝 뒤에서 훈수를 둘 때가 쉬운 거라고.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다. 불과 몇 달 사이 비슷한 말을 적지 않게 듣게 된다. 실제 이미 몇몇 지인은 최근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타주로, 한국으로 떠났다. 물론 비슷한 이유로 새롭게 LA를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무엇이 이 젊은 청춘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는 이 녹록치 않은 현실일 게다. 물은 수류나 바람 같은 외압 없이는 좀처럼 흐를 리 없으니까. 여기에 현실을 돌파하려는 노력,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열망, 극복에의 의지 등의 동력이 합쳐진다.
청년의 때가 ‘하면 된다’라는 아포리즘을 검증해내는 시기라고 했던가? 하지만 산처럼 커다란 이 대명제를 검증하려는 시도가 되레 그 명제의 거대함을 절감하게 되는 계기가 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면 된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면 될까?’라는 의문으로 바뀐다. 이렇게 날마다 끊임없는 부딪침과 시도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단단한 ‘어른 근육’을 완성해 간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인용돼 더욱 유명해진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난 이 말이 크게 달갑지 않다. ‘젊음’이라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젊은이에게 남는 것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물론 젊음을 올바른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청춘들을 향한 탄식의 외침이겠지만, 날마다 뜻한 바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사는 젊은이들의 젊음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편하게 어깨 너머 훈수를 둘 때와 한 명의 선수가 되어 직접 치열한 경기에 뛰어들었을 때의 괴리감과 당혹스러움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도 청춘의 양식은 여전히 꿈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꿈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청춘은 절대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는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다고 했다. 지금 드리워 내 상황을 어둑하게 만드는 그림자에 대한 불평과 좌절이, 어쩌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고마운 빛에 대한 억울한 원망이진 않았을까. 결국 실재하는 건 그림자가 아닌 빛이니까 말이다.
지금 잠깐 드리워진 그늘을 우리네 아름다운 청춘에 광명하는 빛의 증거라고 믿어보자.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졌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지는 것처럼,
젊음이 빛나면 빛날수록 잠시 그만큼의 어두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순간일수록 더더욱 잊지말자. 인생을 눈부시게 비추는 빛에 대한 아름다운 자각이 가능해지는 순간, 그림자 역시 잠깐 쉬어가는 시원한 그늘이 되는 힘나는 반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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