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그는 골동품 같은 회색 스웨이드 로퍼를 신고 왔었다. 요즘도 여전히 그는 바로 그 로퍼를 자주 신고 온다. 처음 볼 때나 4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 신발은 닳지도 않는지 그대로이다.
새 신발의 반짝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 아마도 겉보기와는 달리 고급 제품인지 모른다. 스웨이드 신발을 지금까지도 무척 아끼는 스티브가 딸아이에게 청혼하는 것을 부모인 우리에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의 청혼을 우리는 기쁘게 여긴다고 말했다.
4년 전 스티브가 우리집을 자주 찾아올 즈음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책이 책상으로 주로 쓰이는 10인용 식탁 위에 있었다. 앞마당과 거리가 환히 보이고 창문 바로 앞에 지금은 너무 커버려 잘랐지만 울창한 벤자민 고무나무가 있어서 시원했다. 그래서 딸은 독서를 집중해서 하거나 급하게 공부를 해야할 일 있으면 널찍한 식탁을 주로 사용한다.
나도 때로는 짙은 녹색 두툼한 무명천을 몇 겹으로 깔아두고 그 위에 팔을 올려놓고 책을 읽는다. 딸이 읽고 있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 되었으면 따라 읽는 버릇이 있어서 함께 읽었다. 알고 보니 딸과 몇 번의 만남을 가진 후 스티브가 딸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을 때 나도 그 책에 대한 사랑에 푹 빠졌었다. 변함없이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바이다. 두 남자가 한 여성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해 여름날은 나도 덩달아 마치 콜레라에 걸린 것처럼 그 아름다운 사랑의 열병에 감염되었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도 남자 주인공 플로렌티노처럼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굳은 지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목숨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를 사랑하는 것, 남편을 사랑하는 것, 자녀를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것, 등등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에는 열정과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고 인생의 항해가 다할 때까지 최선의 정성을 쏟아야 된다고 작가는 주인공의 행동으로 묘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의 사랑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극심한 심적인 고통을 겪지만 플로렌티노의 사랑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는다. 모두 노년에 이르러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에 육신은 낡고 등은 굽은 그 때에 비로소 그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흔들림 없는 사랑은 완성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를 감동시킨다. 그 책을 읽다보니 플로렌티노의 사랑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란 여정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신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과 모습을 배운다. 때로는 따끔한 훈계도 우리를 사랑하는 한 방법임을 깨우친다.
삶은 사랑 그 자체를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는 그것이 다 인 것 같다.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여 그 일에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끝장을 보는 집요함이 필요함을 플로렌티노의 사랑을 통해 적용해 보기도 한다.
스티브의 청혼으로 다시 4년 전 그때처럼 사랑의 열병에 잠시 잠겨 본다. 한낱 스웨이드 신발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데 사람에게야 오죽할까. 사랑에 빠져서 청혼한 사람에게 쏟을 정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흔쾌히, 기쁘
게 스티브가 딸에게 청혼하는 것을 허락했다.
윤선옥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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