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성당앞을 지나는데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서있다. 아마 장례식이 있는 모양이다.
젊었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부고공지도 눈에 잘 띄고 장례식에도 자주 가게 된다. 돌아보니 어느새 가까이 알던 이들도 꽤 많이 세상을 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실감이 안 나 하는데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 죽지 않고 이 지구를 떠날 길은 없으니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죽음 자체가 참 황당한 사건으로 느껴졌었는데 나이가 드니 죽음이란 극히 자연스러운 것 같다. 물론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런 일로 세상을 따나게 되는 젊은 이들의 죽음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저 슬프고 나이 더 먹은 내가 살아있다는게 죄송스러워지는 기분까지 느껴지는데 실상 내 나이쯤되면 조금 이르냐 늦느냐가 다를 뿐 죽음 자체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몇년 전 남편을 졸라 작은 생명보험을 들었다. 가는 길에 남는 이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였다. 지저분한 개인집기도 될수 있는대로 다 정리하고 단출하게 가고 싶은 게 내 마음인데 어떻거나 그림을 그리며 살았기 때문에 이것 저것 남겨놓고 갈수 밖에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치우는 값만큼은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집은 조의금으로 들어 온 것을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고 아예 사양하기도 하는 것을 보며 나도 그럴수 있음 좋겠다 싶어 그럴수록 보험이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벌거벗고 태어난 이 세상에서 갈때는 왜 그리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건지 대충 물어보니 관이며 묘지, 그리고 장의사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나면 썩어없어질 관이 왜 그리 비싸야 하는지. 남편보고 만약 내가 먼저 가면 제일 싼 관을 쓰라고 했더니 어떻게 그러냐며 화를 낸다. 그래서 그럼 제일 싼 관을 쓰되 가장 비싼 관 값과의 차액을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보내달라고, 그럼 내게 제일 비싼 관을 해준 것과 같지 않냐고 다짐을 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오시는 분들이 특별히 까만 옷을 챙겨서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례식이라기 보다는 송별회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닐찌. 살다보니 죽음이 아니라도 가까웠다가 언젠지 모르게 소원해지면서 연락이 끊기는 사람도 생기는데 그 모든 것이 나름의 죽음이며 나름의 이별이 아닐까 싶다.
장례식이라는 기약없는 이별을 위해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좋은 옷을 신경 써서 입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것 같다. 또 장례식에서 흔히 부르는 ‘주여, 임하소서’ 같이 슬프고 축축 처지는 성가보다는 ‘주님과 나는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간 일을 속삭입니다’ 같은, 즐겁고 평안한 성가를 부르면 좋겠다. 그리고 내 장례식은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들이 다시 우정을 나누며 가까이 지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실지로 나도 장례식에 갔다가 소원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오래 묵은 진한 정과 새로 다시 만나게되는 신선함이 섞인 아주 좋은 만남을 갖게 됐다. 나는 이 만남이 먼저 간 이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새삼 고맙다.
나의 그날, 오시는 분 모두는 풍성하게 차린 음식을 나누고 오랜만에 바빠 하지 않고 천천히 놀다 가시면 좋겠다. 그러나 이 모든 바람도 실은 살아있는 이의 소망일뿐 그날이 너무 늦어 주윗사람들 힘들게 하지 않기만을 바래본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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