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대학강사·수필가
지난 주 개학식에서 총장이 인사말을 하며, 어릴 때 ‘무슨 일이든 자기가 평소에 즐기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라’는 선생님의 말을 깊이 새긴 후 이제까지 하고 싶은 일들만을 골라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지난 14년 간 우리 대학 총장일이 무척 즐거웠고 보람있었다며 금년에도 함께 열심히 일해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금년을 마치고나면 아내와 함께 오붓한 시간도 갖고 여행도 하고 싶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잔뜩 목 메인 소리였다.
장내 여기저기서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 소리에 한몫 했다. 은퇴 연령이 있으니 조만간의 은퇴를 모두 짐작은 했지만, 오랫동안 진정 행복한 얼굴로 한결 같이 한 자리에 있어 주었기에 마냥 그럴 것이라는 엉뚱한 기대가 있어서 더욱 섭섭했나 보다.
그는 아내에게 특별히 감사하고 싶다며 단상으로 불렀다. 학교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그녀는 품성과 성격이 그와 쌍둥이인양 비슷하다. 항상 에너지에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그녀가 단상에 올라가 남편의 키스와 포옹을 받았다. 이 잉꼬부부에게로 향한 큰 박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교수의 희망사항이 행정적인 면에서 항상 실용적일 수 없으니 교수들과 행정직원들 간엔 긴장감이 흐르게 마련이다. 많은 경우 총장이 의지와 결정권으로 둘 사이의 분위기를 조정하지만 양쪽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모든 교직원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학총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총장의 경우, 이곳에서 내가 16년 간 일하는 동안 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교직원을 본 적이 없다. 나처럼 업적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말들만 했다. 그는 14년 동안 학교 발전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 학생, 교수, 행정직원 모두 가 만족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교육계에서의 명성이 달라졌고, 많은 새 빌딩 과 함께 1년 후엔 정문이 뒷문이 되고 뒷문이 정문이 될 정도로 지리적 발전도 컸다.
그는 대학 내에서뿐만 아니라 켄터키 수도 혹은 워싱턴의 교육가, 행정가, 사업가들을 만나면서도 유머, 지적 이미지와 함께 상대의 호감 속에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카리스마를 본 많은 사람들이 정치입문을 적극 권했다는데, 교육계에서만 보람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며 사양했다 한다.
14년 전, 학교파티에서였다. 옆에 있던 키 크고 멋진 신사와 일상대화를 하다가 그에게 새 총장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미소 속에 자기가 바로 새 총장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아뿔싸! 나는 아직 그의 사진을 보지 못했고 그를 소개했을 며칠 전 개학식에도 참석 못했던 것이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난감하여 얼굴이 새빨개지는 가운데 나를 ‘보’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손을 맞잡았다(미국인들에겐 ‘보’라고 말한다). 그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어릴 적 이름과 같아서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와 대화하던 내내, 총장 면전에서 총장 봤냐고 묻는 일개 강사의 이름을 어찌 잊을까,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 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퍼 맨을 기다리며’가 비평가들로부터 최고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미국 공립학교의 실패를 분석한 영화다. 그 영화에선 한 사람 리더에 의해 교육계를 살릴 수는 없다며 수퍼 맨의 부재를 확실시하지만, 우리 학교에선 지난 14년 동안 기적의 수퍼 맨 리더십 속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다. 우리 교직원 모두는 이 기적이 계속될 것을 믿으며 새 수퍼 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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