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옥
동아서적 대표
캘리포니아의 여름답게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목요일 정오였다. 많은 사람들이 윌셔 거리 LA 카운티 미술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들도 꽤 되었다. 영화감독 팀 버튼의 미술 전시회를 보려고 많은 군중이 따가운 햇빛을 즐기며 레스닉 파빌리언으로 향하고 있었다. 좋아서 하는 일은 더위도 정겨운 법이다. 천천히 줄을 서서 전시장인 몬스터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할리웃 영화의 대부분은 로맨스의 전형, 혹은 한바탕의 액션이 빠르게 전개되어 그야말로 영화를 본 듯한 후련함과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보는 동안은 참 즐겁지만 일주일 만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여러 영화가 비슷한 스토리와 풍경으로 때로는 영화가 서로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릴 때도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집중력이 조금 필요했다. 감독이 왜 저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주는 메시지가 뭘까, 기괴한 장면,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한동안 뒤적뒤적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가 감독한 적지 않은 수의 영화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구별되어 머릿속에 잔상이 오래 남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강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천재의 특징이기에 그의 전시회를 관람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 팀 버튼은 세상은 정말 괴롭고 외롭고 기괴하다고 그의 그림이나 영화로 언제나 일관되게 주장한다. 부적응과 소외로 슬프면 우울의 바다에 푹 빠져라. 갈 데 까지 가보라. 세상은, 삶은 미치도록 우울하다. 세상은 친절하지 않을 뿐더러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러한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다. 끝없이 쫓기기보다는 똑바로 직면하여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겨내라고 그는 영화에서나 미술작품에서 일관되게 말한다. 삐죽삐죽 거칠고 가파른 계단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가면 결국은 출구가 있다는 포스터가 로스앤젤레스 거리에 나부낀다. 그것이 그의 메시지다.
모두가 일하는 시간이라 미술관이 한가하리라 생각한 것이 착오였다. 인파에 떠밀려서 관람하게 되니 생각하면서 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어린 시절 드로잉부터 대부분 무채색인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는 큰 감동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말 보잘 것 없는 낙서처럼 느껴지거나 너절해 보인다. 모두 그렇게 시작된다. 그것에 집중하라. 자기 자신을 믿고 끝까지 열정을 다하라. 누가 뭐라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라. 그래서 세상을 자기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무대로 만들어라”였다. 사람들 틈에 떠밀려 몬스터의 내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그의 영화를 초기부터 다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야 이 천재의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할 것 같았다.
그가 감독한 영화를 보면 그가 타인의 삶에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많은 지 느낄 수 있다.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갚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의 영화를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을 감지하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뮤지엄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가 배출한 걸출한 예술가 팀 버튼은 이곳에 사는 많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또한 어떤 과정을 겪어야 성공적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힌트를 그의 전시회를 통하여 제시했다.
스스로 ‘성공한 미친 우울증 환자’라고 말하는 팀 버튼의 전시회는 많은 젊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듯하다. 그의 예술세계와 생의 이력을 탐구해 보고 싶은 강한 자극을 준다. 나도 때로는 머릿속의 몬스터가 뭉게구름처럼 거대해져서 한없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