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즈음까지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선택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생은 그런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으로 흘러가는 길에 나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래서 갈수록 그 길 위에서 내가 겪게 되는 일들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많은 경험을 찾아 나서는 일보다 때론 더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된다.
정말 인간은 스스로 경험한 만큼 딱 그만큼 배우고 성장하고 공감하는 것 같다. 물론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상상하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몸과 맘에 각인된 체험이 아닌, 그저 머리로 알게 되는 것뿐이다. 많이 안다고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듯이 책을 많이 본다고 나의 경험자체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깊이 있는 경험을 하면, 어느 순간 그 경험을 통한 깨달음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체험한 것과 같은 것임을 우리는 종종 깨닫는다. 백여년 전에 릴케가 느꼈던 고독, 영혼의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그 고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선 고독이 아닌 것처럼.
책이든, 친구의 이야기든 내가 함께 진심으로 슬프고 기뻐할 수 있을 때는 나의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을 때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행복해본 사람만이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 같은 직장인들인 경우 길어야 2주쯤. 그렇게 해서 어딘가를 갔다 온들, 우린 무엇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게 될까. 물론 TV나 여행책자에서 보던 걸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곳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경험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나도 한때는 한 나라라도 더 가보고 싶은 욕심과 유명한 곳이면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맘에 여행지에서조차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지금은 무언가를 무조건 더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천천히 겪어보고 싶다. 그것이 여행이든, 하루하루의 일상이든.
말레이시아에서 산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간다. 2주 정도 여행을 왔더라면 관광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여행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난 아마도 몸과 맘으로 흡수하고 있을 것이다. 때론 버겁고 덥고 지치고, 또 때로는 너무나 다른 문화적인 모습에 놀라기도 하면서. 지금의 이 경험이 내 인생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 미국 생활이 그랬든,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도 내 가슴 깊숙이 긴 자국을 남길 것이란 건 안다. 그리고 삶의 어느 길에선가 슬그머니 내 앞에 나타나 위로를 건넬지도 모르겠다.
많은 걸 찾아 나선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가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좀 더 깊이 바라보며 겪어내는 것. 그것이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며, 결국 타인과, 더 나아가 세상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좀 더 경험할수록, 정말 딱 그만큼씩 자라는 나를 마주한다.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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