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서울의 거리는 더 많아진 차의 행렬, 더 짧아진 젊은 여성들의 스커트와 핫팬츠, 더 늘어난 식당으로 작년보다 훨씬 활기 차 보였다.
공원과 극장에선 아시아를 너머 프랑스에서까지 열풍을 일으킨다는 ‘K 팝’ ‘아이돌’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집안에선 수십 개 케이블TV 채널의 반 이상이 밤낮으로 그들의 공연, 그들이 주연한 드라마, 그들이 출연하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으로 꽉 차 있었다. 지나친 말장난, 주변잡기, 상대의 험담에 웃고 떠드는 게 씁쓸했는데, 청소년들에겐 인기 만점이란다.
잠들은 언제 자는지, 중심지에선 밤 12시에도 교통이 혼잡을 이루었다. 케이블TV 채널의 반 이상도 밤엔 샤핑채널로 바뀌어 부엌용기부터 건강보험까지 온갖 상품이 말 빠르고 예쁜 고소득자 판매원에 의해 밤새도록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신문과 TV뉴스의 보도들은 어둡다 못해 참담했다. 감사원 연줄을 업고 제 재산 챙기기에 급급했던 대주주와 경영진이 300명 서민을 통곡하게 한 부산저축은행 사건,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하는 교수 부인 살해사건, ‘묻지마’ 상해사건 등등.
그 중에서도 거의 매일 쏟아지는 자살뉴스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전 국민이 바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건만, 청소년, 대학생, 노부부 등의 일반인과 교수, 가수, 운동선수, 아나운서, 대학총장, 진흥원장 등 유명 연예인과 역량 있는 사회인의 자살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최고 자살률을 보이는 나라라 한다. 마지막 데이터인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21.5명이 자살했다. OECD 평균 자살률 11.2명의 두 배로, 하루 59명이 자살했던 것이다.
이미 각계각층에선 자살예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다. 교계, 병원, 시민단체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시군별로 예방 시스템을 갖춘 기구를 별도로 움직인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법적 뒷받침도 구상 중이라 한다. 급기야 국무총리도 범국민운동 차원에서 생명윤리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자고 공표했다.
이외에, 이번 여행에선 두 가지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 하나는, 한 동네에 몇 개씩만 있던 영어학원이 동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젠 친지들의 아이들 중 영어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없다. 산수학원, 음악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광역권을 합한 서울시 인구가 2,000만이라는데, 방과 후 동네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또 하나는, 합천 해인사에 갔다가 팔만대장경 외에 눈을 끌었던 신기한 발견이다. 구불구불 가야산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고층 고급호텔과 기숙사형 건물이 수없이 많았다. 가야산을 찾는 사람이 참 많구나 하며 간판을 보니 모두 고시원이 아닌가. 비수기 주중인데도 산보하는 젊은 남자들이 많은 게 궁금했는데, 그들 모두가 고시생이었던 것이다.
아, 수많은 젊은이의 혈기와 국력이 이렇게 소모되고 있구나! 일반대학 삼수생, 의대 사수생, 고시 사수생인 친지들이 생각나면서,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에 대해 가슴이 아팠다. 후에 알고 보니, 국내의 모든 산마다 고시원 없는 곳이 없었다.
한국형 자살은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자살예방 운동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듯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남보다 빨리, 많이, 높이 성공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변화와 심리적 변화가 긴 안목으로 동반되어야 할 것 같다. 돈, 직업, 생김새, 교육, 권력의 잣대를 바람직하게 재인식시키는 운동도 함께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보경
대학 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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