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구부러지는 모퉁이에 위치한 우리 집은 앞집만 일곱 집이다. 일곱 집의 대문이 모두 우리 집에서 내다보여 그들의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오른쪽의 집은 중국인 부부가 딸 하나 데리고 사는데 라이센스를 받은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어 우리 손자는 아침이면 토닥토닥 길을 건너 그 집으로 간다. 원장격인 주인 여자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한국말 몇마디를 하는데, 그 여자가 나를 부를 때 할머니라고 하는 것을 몇 번 들었는지 간신히 아장 아장 걷는 어린 중국 여자 아이가 손자를 데리러 온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 할머니” 한다. 너무 귀엽다. 앞집 할머니라고 특별히 마음을 써주어 내가 아프다고, 또 어머니 날이라고 꽃이며 풍선을 들고온다.
그 옆집은 남자는 이태리 사람이고 여자는 불가리아 사람인데 일생을 노총각으로 지내면서 수퍼볼 할때면 피자와 맥주병을 든 남자들이 모여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하더니 은퇴하고나서 애 하나 딸린 이혼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딸이 어느새 학교를 들어가서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늦게 난 딸 수발드느라 뽕이 빠진다. 불가리아 여자는 나와 모자라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웬지 편하고 푸근한게 친정 동생같다. 지난 해에는 친정에 가는데 그리스가 가깝다고 나보고 함께 가자고 청해주기도 했다.
또 그 옆집은 중국인 부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눈부시게 예쁜데 허구헌날 빨간 스포츠카 타고 데리러 온 남자친구하고 휑하니 나간다. 그 엄마말이 하도 나다녀서 야단을 쳤더니 자꾸 야단치면 임신해 버리겠다고 위협을 해서 할수없이 놔둔단다. 틴에이저 애들 키우기 힘든 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러시아사람들인 그 옆집은 출퇴근 때만 잠깐 보이고 조용하다. 또 그 옆집도 한국인 부부도 딸 하나 데리고 조용히 지낸다.
모두 또래의 애들이 있는 집들이라 날이 좋은 오후엔 나와 서로 불러대며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몰려다니며 시끌벅적 노는 모습이 활기있고 예쁘다.
한국인 부부의 옆집에 사는 백인 부부는 우리동네 집들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살아왔다는데 결혼한지 58년이 되었다는 토박이다. 우리가 이집에 산게 20년이 넘는데 그들은 늘 한결같이 친절하고 편한 이웃이다. 팔십 나이에도 활기있고 여전히 파트타임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매주 거라지에서는 춤선생을 모셔놓고 친구들과 춤을 춘다. 그 할아버지는 십여년전 폐암을 앓아 한쪽 폐를 잘라내고 일생 피우던 담배를 끊었는데 주위의 염려덕인지 밝은 모습으로 건강히 살아 참 보기가 좋다.
또 그옆에는 내 나이 또래의 이태리 남자가 혼자 사는데 몇집 건너 불가리아 여자와 결혼한 이태리 남자하고 어렸을때 함께 이웃으로 지내고 학교도 같이 다녔다고 한다. 지난 겨울엔 갑자기 크리스마스도 가까왔는데 한잔 하자고 청해서 백인 부부, 이태리 남자등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불가리아 여자와 아린이집 여자가 수시로 뛰어가 드나드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이고, 백인 할아버지가 휘파람을 불며 잔디를 깍는 모습도 보인다.
작년 메모리알 데이애는 블럭파티를 하며 불고기 김치에 피자와 에그롤, 볶음밥과 샐라드를 나누었다. 늦은 오후가 되도록 갈 생각을 안하며 놀더니 해마다 하자고 해 올해도 모두 하나씩 들고 와 함께 시간을 나눴다.
좋은 이웃을 가진것은 큰 기쁨이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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