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외부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을 일컫는 ‘형식’이라는 단어는 ‘내용’에 이항 대립적 축을 이루는 문학관련 비평 용어로도 사용된다.
정돈된 형식은 ‘틀에 박힌 전형성’이라는 우를 낳기도 하지만, 형식미라는 단어를 빌어 질서의 아름다움을 가리키기도 한다. 긴 소설을 읽으면서 액자구성이라는 시각적인 장치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형식의 공이다. 일정하고 익숙한 형식이 부재하는 작품에 파격이라는 쉽지 않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 또한 형식이 갖는 커다란 능력이다.
형식은 분명 외적인 요소지만,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써의 형식은 내용의 모양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곧 여러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혹은 자신의 의도대로 배치하고 나열하는 ‘형식’을 통해, 작가는 일의 순서나 우선순위 혹은 가치의 우열 같은 쉽지 않은 화두를 던진다는 의미다.
작가는 주인공을 특정한 환경과 배경에 배치하고, 그에 따른 그들의 반응을 서술해간다. 그리고 서술은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겨 독자의 손에 들려진다. 결과물을 맛보는 독자는 쉽게 공감하거나 의외라며 놀라거나, 분명한 인과관계에 의한 자신의 수학적 반응에 만족하거나 해석이 불가해 혼란스러운 지경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힘든 유년기’와 ‘평안한 노년기’라는 두 가지 ‘내용’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치자. 형식이라는 그릇에 ‘힘든 유년기’가 먼저 담긴다면, 글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의 가슴엔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안쓰러움이 가장 크게 자리 잡을 것이다. 반면 형식상 ‘평안한 노년기’라는 내용이 먼저 소개된다면, 잇따라 전개되는 주인공의 ‘힘든 유년기’는 기대감 넘치는 모험기가 될 수 있다.
흔히들 양분대립적 관계라고 하는 문학의 내용과 형식에 소중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있는 듯하다. 분명 섞이기 힘든 두 요소지만, 그 무엇보다 서로를 완벽히 보완하는 이 둘은 우리에게 ‘내용’의 내용에 자유로울 수 있는 배열의 지혜를 알려준다.
수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사건보다, 각 사건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사하게도 인간에게는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
며, 재창조는 다름 아닌 사건의 재배열을 통해 가능하다.
철학자 니체 역시 상황과 사건을 재배치하는 새롭고 창조적인 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성스러운 긍정의 개체로 ‘아이’를 지목했다.
니체의 ‘아이’는 나이가 아닌 정신 수준에 따른 단계를 의미하며, 순진무구한 아이는 망각에 능해 언제든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없다며, ‘그러했다’는 말은 과거를 바꾸고 싶은 의지를 가진 자들의 슬픔이 이름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날마다 다양한 인생의 내용을 갖게 되지만,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내용은 조절 가능한 자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환경이라는 의외의 요소들과의 충돌과 결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내용이라면 이제 그것을 아름답게 배치할 수 있는 형식을 찾아내보자. 내용의 경우와는 달리, 형식을 결정하는 데는 ‘자아’ 이외의 요소는 크게 필요치 않으니 말이다.
노유미
번역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