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으로는 병명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아버님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 하신 지가 약 3년째나 되셨다. 그 당시만 하드라고 병원다운 병원은 거의 없고 포항도립병원이 있었지만 의료시설이 너무나 빈약했고 의사다운 의사가 없기에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하드라도 큰 효험을 보지 못한다.
올바른 병명을 찾아내는 의료검증시설뿐만 아니라 전문 의사들도 거의 없는 상태다. 또한 약물 치료를 받을만한 좋은 약도 없기에 중병에 걸리면 결국은 사망 할 수밖에 없다. 늦은 가을이 되면 소작인들이 소작한 소작료를 소발에 실어 토지주인인 지주에게 납세하려고 오기에 늦은 가을부터 겨울 내내 소작인들을 접대하느라 집은 온통 바쁘다. 어떤 소작인들은 며칠씩 사랑 체에 머물면서 아버지와 골패(骨牌:구멍의 숫자가 모양에 따라 패를 맞추는 한국전통적인 놀이 및 도박 종류)를 절기기도 하셨다.
약 3-4년간 좋은 건강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몸져누워 계실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심한 독감이 유행한 어느 날 아버지께서 심한 고열과 한기를 느끼는 몸살감기로 몇 일간 고생하고 계셨다. 고열을 동반한 몸살감기 등 간단한 병이 생길 때 전통적인 재래씩 가정 의학으로 치유하려고 온가족이 몇 일간 정성을 다했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무엇 보다 심한 한기로 두터운 겨울용 솜이불을 몇 개나 아버지의 몸을 덮어 들여도 한기는 여전했다. 결국 마을 의사를 불렀다. 마을 의사가 왕진 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왕진을 온 시간이 이른 초저녁 약 8시 경 이다. 추석이 지난 지 한 달째 되는 음력 9월15일이었다.
그야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아름답고 맑은 포근한 가을 날씨였으며 쟁반같이 밝은 둥근달은 이미 하늘 중천에 떠서 온 세상을 휘감아 밝히고 있다. 이때만 하드라고 시골 마을에는 전기가 없었고 밤이면 호롱불이나 남포 불을 밝혔는데 호롱불에 비해 남포 불이 훨씬 밝은 대신 기름이 많이 소모되는 등불이다. 의사의 왕진 가방 안에는 고작 청진기와 해열제 주사약이 들어있을 뿐이다. 가운을 입고 우리 집을 방문한 의사는 청진기로 먼저 아버지의 가슴을 진단한 후 주사를 놓는데 주사약이 아버지의 체내로 들어가는 순간 더욱 심한 한기로 몸을 덜덜 떨면서 그길로 숨을 거두고 계신다.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둘러싼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들은 의사가 주사약을 투입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계신다. 두꺼운 겨울용 명주이불을 덮고 계시는 아버지가 격렬한 한기로 덜덜 떨며 숨을 거두시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어머니와 형제들은 일제히 아버지 깨어나시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연달아 불으면서 오열하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방안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아버지의 연세는 45세 어머님은 46세였다.
당시 17살 난 맏형 15살 난 누나와 한살 차이의 12살 난 나의 둘째형 7살 난 여동생 마지막으로 3살 난 막내 동생 이렇게 6남매 중 나는 중간이다. 조물조물한 자식들을 두고 떠나신 아버님의 죽음은 어머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청청벽력이었다.
3살에서 17살까지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생각 하니 앞이 캄캄하며 태산 같은 중압감에 정신없이 손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하고 계신다. 형제들도 모두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울고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을 그토록 애탄심정으로 통곡하는 울음바다가 된 슬픈 분위기에 나도 많이 울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이 11살까지 죽음을 전연 경험 하지 못했기에 죽음에 대한 계념이 나에게는 있을 수가 없다. 나로서는 아버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이 영영 이별한다는 애절한 생각을 하면서 우는 눈물이 아니고 모든 가족들이 우는 서글픈 분위기에 젖어 나도 함께 많이 울었다.
(몬트레이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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