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선교사는 남편의 고교 동창이고 우리 셋은 대학 동기생이다.그들 부부는 젊은나이에 필리핀에 가서14개의교회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통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운영하여 아이들을 교육하고 빈민들을 섬기는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
3월에 현지인 사역자들을 목사 안수하는 일과 연합 집회에 강사로 우리 부부와 다른 동기 목사 부부들도 초청하니 꼭 와달라고 했다. 나이가 드는지 문득 십수년 동안 얼굴을 못본 옛 친구들이 그리워 나 혼자라도 참석키로 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남편이 용돈이 궁했던 시절, 친구 L이 시집 간 누나들한테 용돈이라도 받는 날이면 나눠 주던 그 우정을 남편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교회 건축중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 이 친구가 필리핀으로 선교를 떠난다고 했다. 자신의 생활비는 사양하고 받지 않아 몇년 동안 가족들을 고생시킬 때도 L 선교사의 후원 교회로 힘겨울 만큼의 선교비를 후원했고 지금까지도 그 사역을 지원한다. K 역시 남편과 나의 대학 시절 best friend 이다.
우리 부부가 경제적으로 고통 받을때, 그가 다녀간 며칠 후에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말없는 봉투가 미소짓고 있었다. “ 사랑하는 친구야! 힘내라! ” 짧은 한 마디의 글은 물질 그 이상의 큰 위로였고 지지받고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 친구들이 이번에 다 모였다. 묵은 친구는 언제나 찬밥에 물 말아 먹어도 입맛을 돋구는 짱아찌처럼 좋다. L선교사 아내를 따라 숲속 교인들의 집을 방문했다. 대나무로 지은 움막집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화장실도 물도 없다. 비라도 오면 짐승의 똥과 아이들의 대변이 범벅이 된 진흙구덩이를 맨발로 밟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번 선교사 부부가 성경 공부를 가르치러 갈 때마다 비닐 봉지에 쌀을 담아 나눠 준다. 그것이 일주일 분 식량이란다 . 눈에 띨 만큼의 미모였던 L 선교사의 아내는 젊은 날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닌 가난한 이들의 어미로 그렇게 곱게 나이들어 있었다. 가난한 이들이 마음에 쓰여 모처럼 부부동반 시내 나들이에도 커피 한잔이면 쌀이 얼만큼인데 계산하며 그냥 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그들을 친구들이 데리고 ‘할로할로’(섞였다는 뜻)라 불리는 빙수를 먹으러 갔다.
유리 그릇에 소담스럽게 담은 각종 과일을 섞어 만든 빙수를 먹으며 농담도 섞고 묵은정도 섞어 분위기를 즐기며 오랫만에 학창시절의 젊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 속 음성이 들렸다. “네 목걸리를 선교사 아내에게 사역 20주년 축하 꽃다발 대신 주어라” 당황스러웠다. 이목걸이는 내게는 소중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줄 만큼 그리 값나가는게 아니었다.
오십되던 생일에 특별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 온 내게 남편이 감사와 사랑을 가득 담은 카드를 써놓았다. 다른 해 같으면 그걸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그날은 “선물은 ? 그래도 오십 생일인데…”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무엇을 받고 싶냐기에 지나가는 말로 ‘목걸이’라고 했더니 정말로 며칠 후 목걸이와 함께 다시 쓴 카드를 내밀었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당신이 이런 선물을 좋아 할 줄은 몰라서 정말 미안하오” 내게 중요한 것은 선물의 내용이 아니라 의미였다. 그 목걸이를 그 녀가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망서리는데 두 번째로 내 마음속 음성이 재촉했다.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으로 꽃다발 대신이라며 목에 걸어 주었다. 그런데 정말 감격스러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K 목사의 아내가 선뜻 손가락에서 다이아 반지를 빼어 20년 동안 수고했다며 넉넉한 웃음으로 건네 주었다. 그녀가 가난한 신학생 남편과 결혼할때 반반한 패물도 못 받고 큰 며느리 노릇하며 수고했다고 얼마전에 손위 시누이가 큰 맘먹고 선물한 것이었다. 뜻밖의 선물에 L선교사의 아내가 “이런 사랑 받을 만큼 한일이 없는데…”하며 흐느꼈다. 그러나 곧 우리는 우리의 반지나 목걸이가 그녀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혼기를 맞은 큰 아들에게 그 녀는 정말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가난한 엄마였다. 그 반지는 며느리감에게 줄 수 있는 시어머니의 유일한 선물이었다. 반지를 낀 그 녀가 울음을 멈추고 결혼 전 남편의 비리(?)를 30년만에 누설했다. 약혼 식 때 패물을 받았는데 학생남편이 돈이 급했던지 결혼 한달 앞두고 다시 가져 갔다고… 아! 그래서 그 녀의 손가락엔 평생 결혼 반지가 없었구나! 그 시절 우리 모두는 가난한 신혼들이었다. 보석보다 귀한 묵은 우정! 참 행복한 나눔이 여인들의 묵은 아픔을 모두 치유했다.
(산호세성결교회 교육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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