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담에 “Easy come, easy go"라는 말이 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렵게 얻은 것은 그만큼 내 안에 오래 머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돈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식에도 적용된다.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때부터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건 우리의 생활이 이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결국 빠르고 편리한 대신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른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라는 곡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것이었다. 며칠 뒤, 학생들의 리포트를 받아 본 선생님은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많은 학생들이 똑같은 내용을 제출한 것이었다. 출처를 조사해보니 학생들 모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제출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불러 제출한 리포트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떤 내용의 리포트를 제출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이 그저 베꼈으니 학생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무대에 서기 위해 나는 곡을 선정하고, 그 곡을 수십 번 반복해 연주한다. 그러면서 나만의 방법으로 곡을 해석하고자 한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곡을 쓴 작곡가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고, 그 곡을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선율의 방향을 찾아간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터넷에 곡명을 쓰고,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해설을 통해 곡을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경우의 과정을 거쳐 각각 무대에 선다면, 어떤 연주를 하게 될까? 그리고 청중들은 어떤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될까?
시간과 정열을 쏟은 후 알고자 갈망했던 사실을 알아냈을 때의 희열과 너무나도 손쉽게 얻어버린 정보를 통한 터득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우리는 알고 싶은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들 사이에서 필요한 지식들을 한자라도 더 얻기 위해 땀을 흘려야 했다. 혹시나 내가 원하는 도서를 누군가 먼저 빌려 가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서관 직원이 적어놓은 카드를 한장 한장 뒤적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이제 도서관 카드는 사라졌다. 대신 수천수만 장의 카드는 컴퓨터 속에 정리되어 있고, 그래서 제목만 입력하면 어느 섹션 몇 번에 가서 책을 찾을 수 있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니 지금은, 도서관에 갈 필요조차 없다. 전자 정보 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자기 집 소파에 앉아 아무런 제약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때 묻은 도서카드를 넘기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식을 열망했던 우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급변하는 시대,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달라지는 세상에 발맞춰 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평생 쌓아둘 소중한 지식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나의 생각과 철학까지 담아 학습해 두었으면 한다. “Easy come, easy go"니까 말이다.
앤드류 박‘박 트리오’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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