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말 일본의 대참사를 보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는 공포와 무기력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아둥바둥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영화를 소개하는 나로서는 요즘처럼 곤혹스러울 때가 없다.
지난 월요일 방송 ‘추억의 영화’코너에서 미리 준비했던‘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은 생방송이 들어가기 5분전에 다른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 1969)로 급히 바뀌어 방송을 하게 되었다. 일본의 참사가 있은 후 시기가 시기인 만큼 재난영화인 ‘타워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우울과 불안감을 더하게 할 거라는 진행자의 제안과 나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리가 있다.
헐리웃의 워너 브라더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쓰나미 피해 후 사후세계와 현세의 인연을 그린 영화 ‘히어애프터’(Hearafter, 2010)의 상영을 일본에서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위기를 대처하는 사람의 자세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듯이 똑같은 영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타워링’ 얘기를 들으면 더 비참함을 느꼈을 거고 또다른 이는 ‘타워링’ 얘기를 들으며 화재에 대처하는 마음의 비장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반면 ‘타워링’ 대신 방송으로 나간 ‘내일을 향해 쏴라’를 들으면서 어떤 이는 일본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는 위안을 가졌을 지도 모르고 또다른 이는 현시국에 오락 영화나 떠들어대는 방송에 무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누구에게는 상처를 감싸 안는 붕대가 되기도 할터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위에 뿌려지는 소금이 되기도 할 터이다.
지난주 동안 보았던 내가 본 영화들은 모두 ‘배틀 로스엔젤레스’(Battle: Los Angeles, 2011)와 같은 침략외계인과의 전쟁영화, ‘타워링’과 같은 화재영화, 그리고 급기야는 세기말 지구종말을 다룬 ‘로드(The Road, 2009)’와 같은 재난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위기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려 애쓰고 상황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보를 모으고 나 자신을 대입하여 일종의 가상훈련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침울하고 절망감만 더할 이런 영화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현재 일본의 위기가 일본만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 인식하게 해주고 미리 대처하는 일종의 훈련지침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자세와 비교적 평화로운 대처능력은 그들의 국민성이라기 보다 일상속에서 온 세대가 견뎌온 대처훈련과 교육때문이라 믿는다.
반면 경험한 적 없고 그렇기 때문에 훈련받지 못한 우리들에게 일본의 대참사는 근거없는 괴소문과 심연으로만 가라앉는 우울함을 유발시키는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지만 ‘포세이돈 어드벤쳐’(The Poseidon Adventure, 1972), ‘트위스터’(Twister, 1996), ‘단테스 피크’(Dante’s Peak. 1997),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 ‘지진열도’(1980) 같은 영화들과 ‘드래곤 헤드’, ‘세븐시드’, ‘소년표류 EX’,’브레이크 다운’과 같은 일본의 재난을 다룬 많은 일본의 만화들 역시 나는 다시 읽고 있다. 흥미나 오락이 목적이 아닌,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위기감각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이른바 영화 ‘하는’ 사람으로서 재난과 그 우울에 대처하는 나의 방법은 이렇다.
문선영 퍼지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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