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대학원을 나온 것도, 칠팔년 일한 경력도, 이력서에 몇 줄 더 늘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고. 연애도 쇼핑도 재미가 없고, 무언가 좀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지만, 그게 무언지 또 어떻게 찾아야할지도 모르겠고. 당장 일을 그만두자니 다음달 렌트비며 페이먼트가 걱정되고, 돈 없이 살 자신도 없고…
LA 첫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엠엔센으로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얼마 전에 읽은 ‘Eat, Pray, Love’에서도 작가는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걸 가졌는데도 밤마다 욕실에서 눈물을 흘려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작가는 결국 다 버리고 일년 동 안 세 나라를 여행하며 책을 썼다. 전적으로 동감하며 읽었던 책이다(영화보다는 책을 권한다).
친구도, 그 책을 쓸 당시의 작가도, 나도 30대 초중반. 그리고 어느 정도의 커리어를 쌓았고, 흔히 말하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여자들.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들이 보기엔 부러워할만한 직장과 커리어일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그랬다. 20대 초반 처음 직장을 다닐 때, 그리고 유학을 떠날 때 막연히 그렸던 30대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현재의 자신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진로를 고민하는 걸까?
20대 초반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이, 20대까진 길러진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선택했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길러낸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나이 - 바로 그런 나이가 아닌가 싶다. 사춘기나 20대와는 또 다른 방황기를 겪고 있는 나이이다.
친구는 부모님이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했다. 왜 그렇게 근면성실을 강조하고, 공부를 잘해야만 한다고 가르쳤는지. 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지 않았는지. 그랬으면 다른 것들에 기웃거리지 않고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며 살지 않았겠느냐며…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세상의 많은 가능성을 편견 없이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게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면 서른 즈음의 뒤늦은 방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부모가 몇이나 될까.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주어진 환경, 지나온 과거,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때론 나도 모르게 길러진 가치관에 갇혀 숨이 막혀오기도 하고,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가위눌린 상태의 몸부림처럼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속만 시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를 인식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에머슨이 쓴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다시 읽는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하나의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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