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여러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여러 장면들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몇 안 된다. 이웃집 친한 친구와 사이가 갈리게 된 때, 원하던 학교에 들어간 순간, 남은 생을 동반할 배우자에게 프로포즈한 날, 내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첫 애가 이 세상에 온 날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공통점은 그 연출의 순간이 다 짧다는 것이다. 길어야 하루고, 대체로 다 한 순간에 속한다. 그러나 자극과 영향은 오래간다.
반면 짧으나 기억나는 이런 순간들을 제외한 99퍼센트의 장면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거의 기억에도 안 남는 것들이다. 기억 안 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들이 진부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알람소리를 견디며 침대서 일어나 양치질하고 밥 먹고 출근한다. 때 되면 집에 돌아와 잡담하고 TV 보다가 잠 오면 침대로 간다. 친구 만나 커피 마시고 한담을 나눈다. 또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 친구 만나는 일도 귀찮아져 ‘방콕’이 되어보기도 한다. 일요일이면 교회 가고 휴일이면 산보 나간다. 이런 장면의 연속들, 이게 우리가 갖는 평범한 인생 장면들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짜릿한 장면들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내 힘으로 연출해낼 수 있는 장면인 것들도 있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찾아든 장면인 것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내가 열심히 공부했더니 원하는 학교에 합격소식을 듣게 된 날 같은 것이다. 후자는, 난 이쪽 레인에서 그냥 운전하고 가고 있었는데 저쪽 레인에서 달려오던 차가 내게 뛰어들어 원치 않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둘의 서로 다른 경우에도, 남기고 싶은 게 있는 반면 빨리 잊고 싶은 것들도 있다. 짜릿한 감동의 장면은 평생 간직하고픈 것이나, 앞서 말한 교통사고나 상처 받은 순간 같은 장면은 어서 내 기억으로부터 사라져 줬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어차피 내 추억 속에 그게 자리 잡을 거면, 그게 내 힘으로 되는 거든 내 힘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오는 거든, 기왕이면 그 모든 게 다 기쁘고 짜릿하고 감사하고 감동적인 연출 장면들이었으면 할 것이다.
다들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이제부터 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인생 장면의 99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평소의 삶을 잘 보내는 일이다. 쉽게 잊힐 평범한 일상을 잘 연출해내는 게 곧 감동적인 장면들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목사다. 목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설교다. 그렇다면 다행히도 목사는 다른 직업과는 달리 순간적 짜릿함의 경험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일요일이 바로 그 날이며 설교가 그 연출 작업이다. 설교는 길어야 30분이다. 그러나 30분 동안의 설교 명장면 연출은 한 주 동안의 일상적인 장면으로 결정된다. 6일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무슨 책을 보고 무슨 판단을 했는가, 또 심지어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자고 어떻게 쉬었는가, 여기에 달린 것이다. 설교만이 아니다. 교인 만나 상담하고 심방하는 일, 회의에서 필요한 발언과 결정을 하는 일들, 또 쓰는 글, 하는 말, 그 모든 게 나의 99퍼센트의 ‘평소’에 달려있다.
특히 설교 준비할 때 이를 많이 느낀다. 어쩔 때는 설교 준비가 며칠을 가기도 한다. 또 어쩔 때는 두세 시간 만에 완성된다. 후자의 그 경우는 나의 평소의 내공에서 비롯되어 그렇게 되는 때다. 목사 된 후 20년간 보아온 책들, 공부한 내용, 생각해왔던 것, 사람 만난 일, 이런 것들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공이 두세 시간의 설교 완성을 돕는다. 나의 일상적 99퍼센트의 장면들이 나의 결정적인 1퍼센트 장면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어느 분야든 지금 세계에서 내노라는 자들이 다 그렇게 해 성공했다. 동양인의 무풍지대였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PGA의 최경주와 양용은, 메이저리그 야구의 추신수와 박찬호, 이들이 다 그랬다. 대회 3분의 명장면 연출을 위해 김연아는 그간 무수히 넘어지고 많이도 다쳤다. 순간 샷 하나로 타이거 우즈를 꺾기 전까지 양용은은 셀 수 없는 스윙 연습을 해야 했다. 그들 99퍼센트의 일상적 내공 쌓기가 그들의 1퍼센트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신앙생활의 이치도 똑 같다. 개인적 삶을 잘 사는 사람이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잘한다. 교회에서 잘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도 잘하고 선교 나가서도 잘한다. 6일을 잘 보내는 사람이 일요일에 교회 와 예배도 잘 드리고 봉사도 잘한다. 일상의 영적 내공을 쌓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다들 나의 신앙생활에서도 명장면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강력한 영적 체험, 진한 회개의 순간, 감동적인 설교, 천상의 소리 같은 찬양, 이런 장면들이다. 하지만 이 장면들을 매일 체험할 순 없다. 주님은 또 그런 식을 원치도 않으신다. 평소에 잘하자. 평소의 99퍼센트 내공 쌓기에 충실하자. 그것이 내게 영적 명장면들을 연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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