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정명훈, 정명화의 ‘정트리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그리고 피아니스트 백건우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세계의 클래식 음악계에 우리 한국을 알린 애국자들이자, 피아니스트가 되어있는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꿈을 꾸게 해준 위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기에 그들의 이름이 나와 있는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뺏긴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아내인 윤정희 씨가 ‘황금어장’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방송은 2010년 칸 영화제때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은 영화배우 윤정희씨를 조명했지만, 음악가인 내겐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부인이라는 점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이 프로그램은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유명인을 초대해 재미있게 ‘집중탐구’하며 과거의 이야기도 과감하게 털어놓게 하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윤정희 씨 역시 예상대로 백건우 씨와의 사랑 이야기로 토크쇼의 대부분을 꽃피웠다.
어떻게 만나,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결혼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까지. 방송을 보고 있자니 대부분의 이야기는 윤씨의 남편자랑이었다.
화려했던 배우의 생활을 뒤로하고 남편 내조를 위해 많은 걸 희생했던 여자, 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며 산다는 그녀를 보며 윤정희 씨와 같은 아내를 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살짝 부럽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서만 스타고 배우이지 스튜디오를 떠나면 한 남자의 아내 손미자(윤정희의 본명)일 뿐이에요.”
진지하게 고백하는 그녀의 눈 속에는 방송용 멘트가 아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중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위롱 차이나 필하모닉 지휘자는 백건우 씨를 향해 “오랜 수양을 거쳐 내면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는 세계 음악사상 보기 드문 존재”라는 극찬을 했다. 이런 백건우 씨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하루에 대 여섯 시간씩 연습을 해야 합니다. 주말도 없죠. 연습을 하는 만큼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다듬어야 할 것도 더 많아집니다”라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서나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해 음악에게 다가가고, 그 사랑하는 대상을 더 깊이 알고자 연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파리에서 사는 그들만의 세상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다. 화려한 삶이 싫고 부담스러워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지인들에게는 편지를 쓰는 것을 즐기고, 새우젓 팍팍 넣고 손수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그들을 보며 "참 아름답게 나이 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헤어진 속옷 바람으로 에어컨도 없는 아파트에서 선풍기를 벗 삼아 피아노를 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는 아내. 팬으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때론 비평가로서 4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온 예술인 부부, 그들처럼 늙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토벤만 있어도 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백건우 씨와 “죽을 때까지 영화 곁에 남고 싶다”는 윤정희 씨. 함께 늙어가고 있지만 꿈을 꾸고 있는 한 그들은‘청년’임이 분명하다.
앤드류 박‘박 트리오’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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