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화가) [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화가)](/photos/SanFrancisco/20110118/painting.jpg)
또 한 해가 시작이다.
너무도 당연히 오고 또 가는 세월인데도 번번히 가는 세월을 들먹이게 된다. 한달에 한번 꼴로 칼럼을 쓰는 경우 열두번의 글중에 두번은 해가 가고 온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써놓고도 진부하다. 게다가 교포사회의 특성상 이곳 신문의 많은 지면은 나를 포함한 로컬인들의 칼럼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많은 필진들이 연말 연초마다 가는 세월에 대해 한 마디씩 쓴다면 독자들은 또 얼마나 식상해 할까.
그런데도 또 다시 새해임을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나이에 민감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온갖 촉수를 들이밀어 서로의 나이를 가늠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인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때마다 참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떻게 숫자에 불과한가? 나이는 나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어내는 경험들은 참으로 소중한 인생의 발자취이며 그 발자취 하나 하나를 쌓으면서 인간으로 성숙하고 삶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어진다. 그리고 그제야 진실로 인생을 사는 맛이 무엇인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판단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참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축복이다. 젊었을 때는 보여지는 삶이 중요했는데 나이가 드니 남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내는 삶이 중요해 진다. 젊었을 때는 성공한 사람만이 눈이 보였는데 나이가 드니 성공만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님을 절감하게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성과 신의, 정직함 등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치스런 장신구등이 필요없어지고 검소하고 질박한 삶이 편해지며 사람들 사이의 시기와 다툼이 참으로 부질없어진다.
최근 신문기사를 통해 행복한 삶과 나이의 관계에 대한 통계를 보았다. 47세의 나이때에 인생에 대한 분노와 불행감을 가장 많이 느끼며 그 후로는 행복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75세가 되면 행복의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마흔 중반에 불행한 이유는 기운은 여전히 넘치기 때문이다. 욕망은 여전히 싱싱한데 이제까지의 여러번의 경험으로 이세상이 녹녹하게 내 맘대로 되지않는다는 무력감은 생기며 게다가 자신이 이제는 삶의 내리막길 앞에 있다는 무의식적 자각때문에 초조해 지기 때문일 터이다.
기운이 없어지는 건 축복이다. 기운이 있었더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못했을 것을 포기할수 있게 해줄뿐이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실은 반짝이는 깨진 유리조각일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때 기고만장해서 살다 병이나 실패후 오히려 참된 기쁨과 의미있는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병과 실패가 모든 이에게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늙음은 공평하게 찾아 온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새로운 삶을 맞을 수 있는 꼭 한번의 기회를 공평하게 맞고 있는 셈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어진 견강과 현실을 잘 헤아려 매 순간 행복하게, 단 한 인연이라도 소중하게, 단 한 끼리라도 더 달고 맛있게 먹으며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이가 숫자에 불과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현명한 삶의 태도이며 세월만이 줄수 있는 값진 선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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