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한편을 할리웃에서 리메이크 하려 한다며, 한번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영화는 멋들어진 제목 값도 못했다. 내용도 좋았고, 주연 배우들도 좋았는데 뭔가 부족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멋 부린 이유와 설명들이 너무 많이 끼어들어 영화를 즐기는 속도를 절뚝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니터를 부탁한 사람에게 보내는 나의 답변은 “할리웃 식으로만 만들면 대박일 것 같습니다” 라는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가끔은 ‘단순무식’한 할리웃 영화가 낫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 할리웃 영화 ‘블랙 스완’은 이와는 또 다른 할리웃의 묘미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발레리나의 집착과 불안감,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자기 파괴적 환상은 놀라우리만큼 섬세하고 리얼해서 보기에 무섭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어찌하여 이런 말라깽이 신경쇠약 직전의 여주인공 이야기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일까. 왜 한국에서는 이런 심리 묘사 중심의 이야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파헤치기 좋아하고 이유 달기 좋아하는 서양의 근대 철학과 문화는 내적 사색을 중시하고, 달관의 경지를 추구하는 동양의 철학과 문화와 달라서 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을 생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심리와 정신적 상태가 최고의 관심인 이곳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 넘어가는’게 미덕이었던 한국과는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내가 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름 문화적 충격이었던 사건들은
‘insecurity’, ‘passive aggressive’ 같은 생소한 심리 분석과 관련되었다. 한국에서는 대충 ‘철이 들지 않아서 그래’ 하며 두리 뭉실 설명되었던 면들이 이곳에서는 ‘모자람에 대한 자신감 결여’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하지 못하는 자기애 부족’ 등과 같은 이유들로 설명된다.
영화 ‘블랙 스완’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발레리나의 심리적 변화와 갈등은 딸에 대한 사랑과 대리만족, 자신을 떠날까 두려운 불안과 딸의 성공을 질투하는 복잡한 엄마의 심리 위에 기대와 무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동시에 전달하는 바람둥이 발레단장의 심리, 그리고 시기와 갈망, 응원과 질투로 엉킨 친구들의 심리 등을 통해서 더 풍부해지고 완성된다.
또한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심리는 그 자신들 본연의 심리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정서를 반영한 주인공의 심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냥 단순히 주인공 발레리나의 노력과 고난, 혹은 성공과 좌절이라는 스토리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의 스토리는 정신분석학 교과서처럼 화려하게 펼쳐진다.
미국을 방문한 친정엄마는 사람들 구경에 여념 없으시면서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씩 상상력을 펼치셨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건 실례’라고 핀잔을 줬었다. 이제 보니 내가 잘못이었던 같다. 친정엄마야 말로 진짜 할리웃의 이야기꾼 자질을 갖추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사람을 관찰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곧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문선영 퍼지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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