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의 네 살이 된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일이 있었다. 평소 아이들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다 사줄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으며 소신대로(?) 키운답시고 장난감을 거의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장난감 가게에 풀어놓고 "네가 골라"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척 궁금하기는 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장난감 몇 개를 바닥에 늘어놓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도 더 진지한 자세로 몇 분간 생각하더니 "이건 너무 커서 안 되고, 이건 나한테 있는 거랑 비슷하니까 안 되고" 등등 나름의 논리를 들어 앞에 있는 옵션들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종 선택된 장난감은 ‘바쿠건’이라는 내가 잘 모르는 캐릭터 장난감이였다.
장난감을 사주었으니 잠깐이라도 같이 노는 흉내를 내야 할텐데… 아이가 좋아하던 수퍼맨이나 하다못해 스파이더맨 정도만 되었어도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지만 이 이름도, 생긴 것도 생소한 장난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나는 모든 것을 아이 아빠에게 일임해 버렸다. 다행히 남편은 "남자 아이들의 놀이는 다 거기서 거기"라며 흥미 있어 했고 그 날로 아이와 아빠의 바쿠건 놀이가 시작했다.
대충 사운드만 들으면 "쉬익~, 피~웅, 쾅!" 정도 되는 로봇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으나 나는 이 요상한 장난감 놀이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특히 엄마의 입장에서 이 새로운 장난감이 아이에게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 장난감은 얼굴이 있다거나 옷을 입었다거나 하는 내 상식에서는 아주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판단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우선 한쪽이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방어를 하는 기본 게임 룰은 다른 놀이랑 비슷해 보였다. 문제는 한쪽이 죽어야지만, 혹은 쓰러져야지만 놀이가 끝난다는 것이다. 아니 네 살도 안 된 아이가 이렇게 폭력적인 놀이를 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호랑이나 공룡처럼 그저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을 좋아했을 때는 편했는데 점점 커가면서 스토리가 있고 대립 관계 속에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하기 시작하자 고민이 생겼다. 선악의 갈림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접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착하고 정의로운데 반해 상대방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한이며 끝내 벌을 받게 되는 결말들이 많다.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건담이니 메칸더 브이니 하는 만화 영화만 봐도 우리의 주인공은 지구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믿음직한 용사들이고 상대는 지구를 노리는 악마의 그림자라 우리의 주인공이 끝내 무찔러서 영광의 승리를 하지 않던가.
악당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 주인공과 함께 잘 살면 좋으련만 ? 얼마나 교육적인 결말인가 - 아쉽게도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악당의 몰락으로 끝을 맺는다.
권선징악의 스토리 구조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인형 놀이에는 멋진 왕자님과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을 뿐인데 왜 남자 아이들은 이 어린 나이부터 늘 정의를 지켜야하고 악을 물리쳐야 하는 책임감이 막중한 놀이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선함과 악함이 적절히 공존해 있어 완전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아직 아이가 너무 어릴까? 아이가 언제까지나 곰돌이 인형을 품에 안고 자는 순수함을 지니기 바라면서도 혹시 이런 놀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이 있다면 당분간은 그냥 지켜볼 생각이다.
지니 조
라이프대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