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업시간에 미국 현대희곡에 대해 배우고 있다. 굳이 시대를 나눠 문학을 살펴보는 이유는 시대가 주는 차별적이고 독립적인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대한 올바른 정보나 이해가 수반될 때 읽는 작품은 이전과 참 많이 다르다. 고전을 읽으면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품의 무대로서의 시대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사고의 뿌리가 바로 자신이 밟고 사는 시대에 깊이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문학작품, 특히 현대인의 대화들로 이루어졌다는 오늘날의 희곡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전반적으로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파괴가 두드러진다. 그 예로 하나의 막으로만 이루어진 단막극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간간히 존재했던 형식이지만 현대 희곡은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The Ten-Minute Play’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말 그대로 무대에 올렸을 때 길어야 십 분 혹은 그 안에 끝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잦게 독백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작가는 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을 엮어 독자들 앞에 들이민다. 보통 시의 전유물이라 불리던 은유를 활발하게 사용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독자나 관객들이 이렇게 은유로 조각낸 작가의 아이디어를 그들의 가슴 속에서 잇고 엮어, 비로소 나름의 의미를 만들게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작품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는 곳은 독자의 머리나 가슴이며, 고작 십분 정도의 분량만을 기억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라고도 덧붙인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맞는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이 희곡들에는 ‘발단’이 없다. 배경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바로 본론, 곧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갈등은 매우 급하게 절정으로 치닫고 이내 급한 해결책이나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독자들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짧고 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
조금 성급한 결론을 내자면, 이것이 바로 현재 문학이라는 수단을 빌어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 중 일부이다. 장편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많은 현대인들을 위해, 짧은 망설임으로도 넉넉히 십분은 써버렸던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사라져 버렸다. 문학에서도 시간 효율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커피샵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십분 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본론’부터 말하라는 흔한 우리의 언어습관이 문학을 통해서도 스며 나오고 있다. 짧은 시간에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현대 작가의 역량에도 주목해야 하지만, 그만큼 등장인물의 행동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발단과 배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우리가 사는 모습이 그 발단과 배경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개인 매체의 발달로 이 장르의 인기는 더욱 가속이 붙고 있다. 꾸준히 시대의 옷을 입어 온 문학이지만, 현 세대의 옷은 공공의 사고와 고민을 최소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서로에 대해 적당히 무심하고, 결국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해석이 결론이 될 수 있다는 접근 또한 그렇다. 긴 말이 필요할 정도로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가 상실되고, 그런 논의 자체가 자칫 시간 낭비로 오해 받기도 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다.
노유미 / CSUN 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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