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라워호가 102명의 필그림들을 태우고 신대륙에 도착한 것은 1621년 12월 26일이었고 그 해 겨울에 그 중에서 절반이 죽었는데, 그 때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학을 설립한 것은 1636년이었다.
신대륙에 도착한지 15년 만에 세워진 그 대학은 뉴 칼리지(The New College)라고 불렸는데, 그것이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라고 불리게 된 것은 1639년 3월 13일부터였다. 그 이유는 존 하버드라는 사람이 책 400권과 자기 재산의 절반(700 파운드)을 헌납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 칼리지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학에서 수여하는 박사 학위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미국 땅에서 생겨난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쳐서 내보내면서 학위라는 것을 주어야 되었는데, 박사 학위를 수여 하려고 해도 박사 학위를 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박사 학위라는 것은 반드시 박사학위 소지자의 심사를 거쳐서 학위가 수여 되어야만 되는 것인데, 그때 까지 미국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박사 학위를 주기 위한 박사가 필요 하였기에 할 수 없이 학생을 영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서 박사 학위를 받아오도록 하였다. 영국 측에서는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이런 저런 트집과 핑계를 잡아서 박사 학위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직접 박사 학위를 받아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의 대학에서는 다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미국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그 사람에게 박사 학위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다수결로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다수결에 의하여 정해진 그 최초의 박사 -즉 ‘엉터리 박사’-가 그때부터 다른 사람을 심사하여 또 다른 박사를 배출해 내게 되었다. ‘엉터리 박사’가 배출해 낸 박사를 어떻게 ‘진짜 박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미국의 첫 번째 박사는 ‘다수결로 정해진 박사’였으니 결국은 진짜가 아닌 ‘엉터리 박사’였고 두 번째의 박사는 그 ‘엉터리 박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엉터리 박사’였다. 결국은 그 후의 박사가 모두 다 ‘가짜 박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번은 내가 위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영국에서의 첫 번째 박사는 가짜가 아닙니까? 알고 보면 처음에는 모두 다 가짜 박사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는 박사였습니까? 그 사람들도 박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국에서 왜? 영국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프랑스로 갔더라면 오히려 쉽게 받아 올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 따기가 거저먹기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 당시에는 프랑스가 미국에 대하여 좀 더 우호적이었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프랑스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국 사람을 원수처럼 생각하고 있지만요. 제가 직접 프랑스를 가 본 적이 있는데요, 그들은 정말로 미국을 싫어하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가 지나치더라니까요!”
“그렇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100% 동감하고 있습니다. 하긴, 나뿐 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다녀온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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