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의 부패성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명예’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좋은 의미의 단어였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종류들 가운데 그래도 가장 상위에 속한 게 아마 명예욕이 아닐까 싶다. 물욕, 성욕, 식욕 등은 그것들이 갖는 현상적이며 물리적인 특징 때문인지 아무래도 정신적인 영역인 명예욕보다는 좀더 처지는 것으로 비쳐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생각은 이원론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연유에서도 명예욕이 과도해지면 다른 욕구들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에는 명예가 그토록 심한 집착증세로까지 발전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더 나아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개인마다 나름대로의 명예를 추구하려는 동기가 커졌다. 상위에 속한 욕구인 만큼 그 치열함도 더해졌다. 하지만 관심이 더 많아지고 더 치열해졌다고 해서 그들의 의도대로 명예는 얻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정직한 답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게 다 그렇지만, 명예라는 것은 특별히 자연스러울 때 빛난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의도적이지 않으며 작위적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존경은 만들 수 없고 살 수 없는 것이다. 명예는 타인의 존경과 인정에서 오는 것일 텐데, 타인이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동의하지(되지) 않는 명예가 어떻게 명예일 수 있겠는가. 진짜 명예란 시작부터 그것을 목표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인데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테레사 수녀 같은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그래서도 가장 한심한 현상은 명예를 조작하려고 애쓰는 일이다. 명예를 얻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처럼 꼴사나운 것도 없다. 명예는 자연스러운 삶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사실을 모른 채, 학위 같지 않은 학위를 명함에 파고, 잠시 스쳐 지나간 그 학교가 자신의 모교인 것처럼 과시하고, 그 많은 명함 속 직책들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까 싶은 궁금증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이 면의 자연스러움을 가장 두드러지게 경험해야 할 영역이 신앙의 세계일 것이다. 세속세계야 어쩔 수 없다. 특별히 정치세계는 원래 그러려니 하니까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앙세계는 그 자체가 명예를 조작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것을 생산하는 데가 아닌 극복해야 하는 데가 신앙세계다. 그래서 신앙세계에서 명예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만큼 아이러니도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저 사람보다 신앙이 더 좋다”라는 말은 그 자체가 어법상으로도 옳지 않다. 남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도 이상하지만 자기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신앙은 경쟁의 조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신앙 우열’의 경쟁 체제 구축을 위해서 오신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런데도 그런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따르겠다고 하는 교계에서 이 ‘아이러니’ 실현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당연한 수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명예라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나의 우위성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자이며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것의 증거이다. 그러나 그것을 세상적 경쟁의 논리가 아닌, 겸손과 자연스러움의 논리로 접근해서 얻는 게 명예다. 그런 면에서 가장 큰 오해는 남을 누르면 내가 올라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를 향한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남을 비하시키면 내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급스런 형태로, 직설적 화법이 아닌 간접화법일 때, 즉 최대한 시니컬할 때 더 효과적인 성공을 거둘 거라고 다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새는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인기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열심히들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남을 비하하면 내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상대를 비하시키는 그 수준만큼 더 내려가게 되어있다.
말조심이 중요하다. 아니, 말하는 나의 내면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남을 깔아뭉개는 말, 냉소의 냉기가 가득 느껴지는 말, 이런 말부터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놓고 말하는 것부터 주의하고, 그게 어느 정도 절제되면 그 사람 안 보이는 데서도 존중과 예의의 자세로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그래야 한다. 세상이 더 그래주길 요구하는 게 기독교가 아니다. 나부터, 내 교회서부터, 자연스런 습관을 그렇게 키워가야 한다. 특별히 교회는 그 습관이 우리 안에서부터 연습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이다. 교회서 못하면 밖에서도 못한다. 이번 주 교회 가면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이런 데에 더 신경 써주시기를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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