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흔히 ‘신사의 게임’이라고 부른다. 골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어려운 스포츠이지만 골퍼는 자신을 추스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스포츠들은 대개 심판이 있어 판정을 내리고 경기를 끌어가지만 골프는 혼자서 하는 경기다. 다만 모르는 룰에 대해서만 경기위원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골프에서는 정직성과 에티켓이 어느 스포츠보다도 강조된다.
그러나 골프의 이런 정신이 아마추어들 사이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듀크대가 아마추어 골퍼 1만5,000명을 대상으로 “라운드 할 때 얼마나 정직하게 플레이 하는가”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95%가 골프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답했다. 볼이 어려운 라이에 놓이면 풋 웨지로 슬쩍 처내기도 하고 몇 피트짜리 퍼트를 그냥 걷어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코어를 실제보다 낮춰 적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골프 매거진은 규칙 위반인데도 아마추어들 사이에 용인되는 행동으로 티샷하기 전에 먼저 친 플레이어에게 어떤 클럽을 썼는지 물어보는 행위(규칙으로는 2벌타), 연습스윙 하다가 무심코 볼을 건드린 후 원위치 시키는 경우, 어드레스하려다 볼을 움직이게 하고도 원위치 시키기(이상 1벌타) 등을 꼽고 있다. 이런 정도는 아마추어들의 ‘애교형 반칙’으로 봐줄 수 있지만 프로에서는 어림도 없다.
LPGA 투어에 참가한 한국 선수 두 명이 속임수를 쓰려했다는 주장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주 열린 캐나다 여자오픈 1라운드 마지막 18번 홀에서 정일미와 안시현이 공을 바꿔 친 후 스코어카드에 사인하는 바람에 실격 처리됐다. 두 선수는 뒤늦게 실수를 발견하고 경기위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고 밝혔지만 한 미국인 캐디가 “숨기려 하다가 걸릴 것 같으니까 털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일파만파 커진 것이다.
두 선수는 캐디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여서라도 무고함을 밝히겠다며 펄쩍 뛰고 있고 LPGA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니 진상은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캐디가 평소 한국 선수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표출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선수에 대한 주장이 악의적인 동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LPGA를 점령하다시피 한 한국 선수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와 관련해 또 한 번 경각심을 깨우쳐 주고 있다. LPGA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 3명 가운데 1명이 한국 선수들일 정도다. 선수 숫자뿐 아니라 실력에서도 뛰어나 LPGA 랭킹 10위 안에 한국 혹은 한국계 선수가 5명이나 올라 있다. 이러니 한국 선수들에 대한 견제가 거세지는 것은 당연하다.
2년 전 논란이 됐다 백지화된 LPGA 영어사용 의무화 안은 이런 기류에서 비롯된 것이며 표현은 하지 않아도 한국 선수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캐디들이 적지 않다. 트집을 잡으려는 시선이 곳곳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을 일과성 해프닝으로만 보기 힘든 이유다.
한국 선수들이 정말 LPGA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골프를 잘 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모습을 지양하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섞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부자 몸조심 하듯 처신에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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