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는 눈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와 보금자리를 뜻하는 ‘알라야’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네팔이나 티베트 등 인근 지역 사람들이 바라보면 아득하게 멀리 우람하게 솟은 순백의 산맥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중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티벳 사람들은 초모룽마라고 부른다. ‘세상(우주)의 어머니 신’이라는 뜻이다. 네팔 사람들은 ‘사가르마타’라고 부르는 데 ‘하늘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신들의 영역이었던 히말라야가 인간들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이 1800년대 들어 히말라야 일대의 측량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수십년에 걸친 측량 작업으로 세계 최고봉이 가려지고, 1865년 영국 왕립지리학회는 최고봉의 이름을 에베레스트로 결정했다.
에베레스트는 1830년부터 10여년 인도에서 측량국장을 지냈던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네팔, 티벳 등 지역마다 산의 이름이 제각각이어서 ‘에베레스트’로 이름을 정했다는 설이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히말라야를 찾은 것은 1883년 영국인 윌리엄 그레이엄이 최초였다. 당시 그는 히말라야의 칸첸중가 일대를 등반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1920년대 조지 맬러리 등이 도전했다 실패하고, 1953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게이가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후 에베레스트 정복은 세계 산악인들의 필생의 목표가 되었다. 스위스(1956년), 중국(1960), 미국(1963)의 산악대가 차례로 등정에 성공하고 한국은 1977년 8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극히 선별된 산악인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해 성공하거나 목숨을 잃거나 했다.
그런데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인 2003년 에베레스트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그해 정상에 오른 사람은 무려 264명에 달했다. 그 숫자가 이듬해에는 330명, 2006년에는 460여명, 2007년에는 근 600명으로 불어났다.
산이 갑자기 낮아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에베레스트 정복 인구가 많아진 것일까? 답은 ‘돈’이다. 등반이 상업화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상업 등반대가 우후죽순 들어나면서 에베레스트는 이제 돈 있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 여성 산악인인 빌리 비어링 같은 사람은 “진정한 산악인이라면 이제 에베레스트에 가지 말라”고 쓴 소리를 한다. 에베레스트가 돈벌이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그는 당시 4만 유로를 등반 주선업체에 지불했는데 그 결과 해발 5,350m 베이스캠프에서 온갖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따뜻한 물 목욕은 물론 카트만두에서 헬리콥터로 공수해온 신선한 딸기도 먹을 수 있었고 텐트 안에 설치된 평면 TV로 영화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돈이 끼어들면 세상없는 영산도 그 신비로움을 잃어버린다. 오은선씨의 ‘히말라야 14좌 등반’을 둘러싼 진실공방도 화근은 상업주의다. 상업주의가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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