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에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역만리 떨어진 고향에서 전화를 건 친구는 “H가 죽었다”고 말했다.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뿐이었다.
전화를 건 친구나 받은 나나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이 때 만큼 현실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때가 7년 전이다. 말수가 적었던 그 친구는 지방 도시에서 상경해 대학을 다니며 사회에 대해 한창 꿈을 꾸던 때였다.
언론사에서 대학생 리포터로 대학생 주간지를 같이 만들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이서 술도 마시고 사랑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얼마 안 되는 원고료에 뿌듯해 했던 영락없이 꿈 많던 대학생들이었다. H는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적어도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있던 무렵 한국에서는 취업난과 비정규직 활성화가 맞물려 아무리 일을 해도 저소득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88만원 세대’란 꼬리표가 청년들에게 붙기 시작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양산법’이 되던 시기였다. 당시 20대 청년들은 대기업에 입사하면 이유 불문하고 인생의 승자가 되고,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사다리 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하기 시작했다.
H는 꿈을 찾아 언론사에 입사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결국 그는 첫 직장 퇴사 후 비정규직 직장을 얻어 말 그대로 88만원 세대가 됐다. 함께 못 마시는 술을 나누며 20대인 우리가 잘못된 것인지 사회가 잘못된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젊은층이 희망을 자꾸만 잃어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2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은 분명 그 공동체가 아프다는 신호이다. 그럼에도 문제를 외면한 채 사회 진출을 앞 둔 젊은이들의 나약함만 들춰내는 사회는 어딘지 비겁하다. 경제대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한국, 조금 더 들춰보면 수백만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이란 박봉 속에, 취업난 속에 지금 울고 있다.
얼마 전 19세 소녀는 아무리 일을 하고 발버둥 쳐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오늘 하루에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35명은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다. 사회안전망보단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는 한국은 자살공화국 1위가 되었다.
H의 죽음은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자꾸만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묻게 만든다. 요즘 미국도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사상 최고 수준이다. 경기침체 이후 한인 중장년층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미래 없음’에 힘겨워 하는 한인 젊은이들의 하소연도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다. 사회와 가정이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길 바라며 먼저 간 친구의 명복을 빈다.
김형재/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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