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이론의 여지없이 명쾌한 사실들도 사안이 진행 중인 동안에는 찬반여론이 분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90년 전 미국을 뜨겁게 달군 것도 바로 그런 이슈였다. 여성은 참정권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시민이면 누구나 참정권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90년 전까지만 해도 미 연방법은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들이 정색을 하고 내놓은 이유들이 당시에는 그럴듯했다.
첫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여성이 정치 같은 더러운 것에 발을 들여 놓으면 타고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잃어버린다는 주장이었다.
둘째,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여성들이 투표권을 가져야 식품 위생법 같은 걸 제대로 만든다는 여권운동 진영에 대한 반박이다. 주부들이 베이킹소다 물에 타서 냉장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싱크대 막히면 끓는 물에 잿물 약간 섞어 부으면 금방 해결될 것을 번거롭게 식품 위생법 같은 게 왜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셋째, 여성은 투표할만한 판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어봤자 아버지나 남편을 따라서 투표할 게 뻔한데 굳이 투표권을 가질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혹시라도 여성이 남편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투표하면 집안에 분란만 생길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외 여성의 참정권을 극구 반대한 측은 주류업계였다. 음주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만큼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금주법이 통과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남편의 음주 때문에 고민인가. 투표권 보다는 맛있는 요리가 남편의 술버릇을 더 빨리 고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사실 미국에서 여성이 최초로 참정권을 가진 것은 1776년 뉴저지에서였다. 독립전쟁 후 뉴저지는 ‘50파운드(미화 250달러) 이상의 재산 소유’를 참정권 자격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때 ‘mem’ 대신 ‘people’이라고 법조문을 작성하는 실수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졌었다. 하지만 30년 후 이 표현을 고침으로써 여성 참정권은 다시 무효가 되었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미국에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했었다. 헌법개정안은 연방의회를 통과하고 36개주의 비준을 얻어야 하는 데 그 마지막 관문이 1920년 8월 테네시 주하원이었다.
1920년 8월18일. 기온이 화씨 100도에 달하는 무더운 날이었다. 테네시 주의사당 안은 노란 장미를 든 사람들과 빨간 장미를 든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노란 장미는 여성참정권 지지, 빨간 장미는 반대의 상징이었다. 비준 동의안에 대한 전날 표결 결과는 48대 48. 여성들은 “제발 한 표만 찬성으로 돌아서기를 …” 애타게 기다렸다.
‘한 표’는 생각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그 전까지 일관되게 여성참정권에 반대했던 해리 토마스 번이라는 24세의 초선의원이었다. 그는 이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착한 아들아, 찬성표를 던져라”는 내용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랐다.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자 수백명 지지자들은 들고 있던 노란 장미를 던지며 환호했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장미의 비’라고 부른다. 이어 8월26일 수정헌법 제19조가 법제화하고 그 결과 미전국의 1,700만 여성들은 마침내 참정권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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