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해관계를 갖고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신뢰받는 중견국가로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일치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대북 정책이 효과를 거두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평가들이 많았다.
현재의 한미, 한일 관계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좋은 상태로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중국의 전문가들은 천안함 사태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중 관계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뉴욕대 국제정치학 교수를 지낸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스티븐 노어퍼 수석 부회장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 대통령에게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총평했다.
노어퍼 부회장은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사상 첫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담 등을 성과로 거론하며 "한미 동맹의 견지에서 볼 때 두 나라는 냉전 종식 후 가장 강고한 양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센터 소장도 이 대통령의 대미(對美) 전략에 대해 "불평을 제기하는 미국의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앨런 롬버그 헨리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쌓은 친밀함은 놀랄만한 것이며, 두 정상의 관계는 양국 정부 전반의 유대를 강화시켰다"고 전제한 뒤 "국가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 이익을 바탕으로 추동되지만, 어떤 지도자이냐에 따라 큰 차이를 낳을 수 있다"며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의 한미관계에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롬버그 연구원은 "물론 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한미관계는 극적으로 바뀌어 향상됐다"며 "전작권 전환 시점 연기결정은 현재 양국 관계를 이끄는 협력과 공동 목표의 정신을 나타내는 한 예"라고 지적했다.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와세다대 교수는 "일미관계가 불안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미 관계는 이 대통령의 역량 덕에 훨씬 공고해진 게 사실"이라며 "전체적으로 볼 때 일.미.한 동맹이 공고해진 것은 이명박 정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일관계도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 성향의 시게무라 교수는 물론, 진보 성향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도 이 점에선 평가가 일치했다.
다만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돼 초기에는 순조롭게 발전했지만 천안함 사태와 한미 군사훈련 등을 놓고 볼 때 견해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한중 관계는 비교적 평온하게 발전해 왔고 집권 초기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면서 "그러나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을 전혀 믿지 않은 채 군사훈련 등 지나친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 스나이더 소장은 "아직 그다지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고,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고, 롬버그 연구원은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롬버그 연구원은 하지만 "앞으로 이 대통령이 실용적인 접근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며, 북한이 최소한의 온건한 협력적 태도를 보인다면 남북한 긴장을 낮추고 비핵화 논의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와다 교수는 "일한(한일) 관계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대북 관계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최근 8.15 경축사에서 북한의 발전을 돕겠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북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힘으로 압박하려는 건 좋지 않다"고 비판적 조언을 했다.
시게무라 교수도 "이 대통령이 적어도 ‘북한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대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대북정책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대체로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 목소리가 컸다.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인 장롄구이(張璉괴<王+鬼>)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이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라는 과거 정권과는 다른 새로운 안보환경에 따른 것"이라면서 "북한에 일방적인 지원을 보내지 않고 평등한 관계에서 남북관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류장융(劉江永)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이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이후 기본적으로 제재와 한미동맹강화 정책을 펼침으로써 한반도 정세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와 세계금융위기 극복 등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긍정적인 평가들을 내놨다.
노어퍼 부회장은 "한국 정부는 광범위한 국제무대에서 엄청난 열의를 동력으로 삼아 큰 신뢰를 얻었고, 성과도 훌륭하다"며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우수한 성적에서부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유치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국제사회의 찬사와 동북아 지역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혁신의 모델, 아시아 개발국가의 모델로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투영시켜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국제적 인권 개선 노력을 선도하는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 국제 평화유지를 위한 한국의 지지, 문화.예술 분야의 급성장 등 모든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진전에 대해 한국과 이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이 대통령의 ‘글로벌 코리아’ 구상은 매우 긍정적이며, G20 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의 역사적 이벤트"라고 말했다.
롬버그 연구원은 "G20 정상회의와 차기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는데 상징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와다 교수는 "한국의 힘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강해졌다"며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직접 할 일은 하고, 남을 이용할 것은 이용해서 한반도의 최대 과제인 ‘평화 유지’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롄구이 교수는 "현 정부 출범 이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등 총체적으로는 양호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으며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한 류장융 교수도 "이명박 정부가 세계금융위기란 거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입을 모았다.
외교적 영역에서 향후 과제를 놓고 스나이더 소장은 이 대통령이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비롯, 동아시아의 역내 비전을 창출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개인적으로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관계가 더 공고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게무라 교수는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일본과 미국을 배경으로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일.한.미 동맹은 중국과 대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과 대등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롬버그 연구원은 "싸움이 난무하는 한국의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여러 어젠다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 리더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한동안 긴장되는 건 피할 수 없고, 이 대통령은 최악의 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직접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펴기 어렵다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을 통해 북한에 손을 내미는 방법도 있다"고 고언했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힘을 합쳐 동아시아 공동체의 건설에도 속도를 내게 되길 공통적으로 기대했다.
진찬룽 교수는 한국과 중국이 조속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나서고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통해 3국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치에 대한 주문도 다양하게 제기됐다.
시게무라 교수는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 미국보다 빨리 리먼 쇼크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등 이 대통령의 임기 전반기는 전반적으로 성과를 올렸다"며 "2~3년 후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켜서 이 대통령의 업적을 이어나가고 싶다면 앞으로는 박근혜 의원이나 야당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같은 당의 박 의원과의 관계는 일본에서 보기에는 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삐걱거린다는 인상이 있다"는 언급도 했다.
와다 교수는 "이 대통령이 집권한 것은 한국이 이제 ‘혁명의 시대’를 끝내고 ‘건설의 시대’로 향하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잘해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사회운동 세력을 힘으로 누른다는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앞으로는 사회운동 세력의 생각을 들어가면서 국가의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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