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한국으로 역이주한 한순기 거사는 타고난 강골에다 꾸준한 운동으로 오십대인데도 어지간한 이삼십대보다 훨씬 탄탄한 근육형 건강남이다. 귀신 잡는 해병 출신에다 검게 그을린 피부색까지 어우러져 그는 더욱 옹골차 보인다.
겉으로 풍기는 굳센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내면은 적이 부드러웠던 것 같다. 보살들 위주인 북가주연화합창단(지도법사 정율 스님/단장 보월화 보살)에서 그는 몇 안되는 남저음 목청의 주인공이었다. 사위도 함께였다. 부인도 단원이었다. 딸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손윗동서 또한 단원이었다. 비즈니스로 바쁜 가운데서도 그는 주요행사가 있을 때면 거의 어김없이 참가해 장내정리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재작년 연말 그가 북가주해병대전우회 제19대 회장이 됐다. 오클랜드 삼원회관에서 열린 취임식 때 그는 깜짝놀랄 발언을 했다. 그날 그 자리에 있기까지 모든 것을 부처님의 공덕으로 돌리며 열심봉사를 다짐한 것이다. 불교모임을 제외한 한인사회 행사장에서 부처님 공덕 발언은 거의 초유의 일이었다. 한순기 신임회장의 배짱 두둑한 깜짝발언에 취임식장은 일순 웃음이 터지면서 화끈박수가 따랐다고 한다.
이는 예외적인 에피소드다. 북가주 한인사회에 제2, 제3의 한순기 발언이 나오기는 좀체 어렵다고 보는 게 옳다. 종교적 배타성이 심해 적어도 비즈니스를 하려면 불자들처럼 한인사회의 종교적 소수자들은 여러모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이런저런 이유로 불자임을 숨기면서 -최소한 드러내 말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친구교제나 우리말공부 등 이유로 자녀들에게는 교회나 성당에 나가도록 권장하거나 방임하는 불자들도 더러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에서 의미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동안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서 열린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주관 2010교수불자대회에서다. 이 대회에서 서울대 강사인 명법 스님은 미국이민사회에서의 불교에 대해 조명했다. 연합뉴스 법보신문 등 관련보도들에 따르면, 스님은 다른 이민자들과 달리 미주한인들이 왜 전통종교인 불교를 외면하는지 심층분석했다.
논문 및 보도에 인용된 재미한인사회의 불교위상은 초라하다. USC 아태리더십센터의 2008년 실태조사 등 몇몇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재미한인의 75%는 교회에 다니고 불자는 2~4%에 불과하다. 어림잡아 기독교인의 25분의1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명법 스님은 유럽에서 아랍계 증가는 이슬람 확산을 가져왔고 미국에서 라틴계 증가는 가톨릭 급증으로 이어졌으나 미국의 한인증가가 한국불교의 확산은커녕 한인불자들의 기독교개종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 이유로 스님은 한인들의 주류사회 편입열망이 높은데다 교회가 이민사회에서 한인들의 종교적 사회적 정체성의 빈 공간을 빠르게 채워나간 점을 꼽았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과 이민자로서의 권익보호에 교회가 앞장선 데 따른 것이다.
스님은 아울러 한인교회들이 구축한 공동체적 성격, 왕따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학생들이 불자부모의 종교를 따르기 어렵다는 현실도 지적하며 한국전통문화의 70% 가량이 불교문화인 상황에서 불교를 모르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희석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체성 부분에서 도리어 타종교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카멜 삼보사(주지 대석 스님)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청소년 템플스테이를 통해 전통성인식 등 한국문화 체험의 장을 열어주고 있는 것을 모범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구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한국사회의 지도적 계층이 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세가 확대됐음을 들어 스님은 재외한인에 대한 포교는 재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존립을 위해서도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 전망이 곁들여졌다. 대부분의 대하에 불교강좌가 개설돼 인기를 끌고 우선 인텔리계층을 중심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주류사회의 불교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불교를 멀리했던 한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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