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우루과이에게 아깝게 져 8강 진출에 실패한 후 “이제 무슨 낙으로 사느냐”며 허탈해 하는 한인이 많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목청 높게 응원을 하는 지구 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열성을 보인 한인들로서는 뭔가 허전하고 답답한 심정일 수밖에 없다.
한국 선수가 찬 골은 골대를 맞고 나오고 우루과이 선수가 찬 공은 들어갔으니 골대를 탓할 것인가. 그러나 찬찬히 따져 보면 나이지리아 전 때는 나이지리아 선수가 찬 공이 골대를 맞고 나와 주는 바람에 한국이 역사상 첫 해외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
29일 열린 파라과이-일본전에서도 승부를 가른 것은 골대였다. 결정적인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와 득점에 실패한 후 승부차기에서마저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바람에 일본은 5대 3으로 지고 말았다. 한일 양국 모두 골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한국과 일본 모두 8강에 당당히 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8강 진출에 성공한 팀들 면면을 보면 어느 팀 하나 한국보다 못한 데는 없다. 실력을 생각하면 16강에 오른 것만도 별로 억울할 것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경기는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신나는 법이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승부욕이 과해지면 친선과 화합의 장이 돼야 할 스포츠 제전이 오히려 반목과 증오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종종 축구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은 정말 보기 흉하다.
이번 대회에서 많은 한인들은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북한과 일본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북한이 포르투갈에 7대 0으로 지자 고소해 하기보다는 안타까워했고 일본이 파라과이에 선전하고도 분패하자 동정과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에서나마 현실에서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낸 셈이다.
이번 대회는 전년도 우승팀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등 강호가 일찍이 짐을 싸는 이변이 벌어졌지만 결국 8강에 오른 팀은 실력이 있는 팀들이다. 축구가 종교인 브라질을 비롯 이에 못지않게 전 국민이 축구를 즐기는 아르헨티나, 유럽 최강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 등 한국과는 실력 차가 뚜렷이 나는 팀들이 너무나 많다.
4년 뒤 브라질에서 열릴 대회에서 한국이 더 좋은 성적을 내려면 지금보다 월등한 실력을 쌓아야 하겠지만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2002년 4강에 올랐던 것은 우리 세대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일인데 이를 자꾸 요구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떨어졌지만 월드컵은 아직 2주 가까이 남아 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공 다루는 기술과 팀웍을 보는 것만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팀 패배와 함께 온 허탈감을 훌훌 털고 4년 후를 기약하며 세계 일류급 선수들의 활약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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