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출전중인 미국팀이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되돌아왔다. 미국은 LA시간으로 23일 아침 벌어진 알제리와의 예선 최종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다나븐의 골로 1대0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중계를 하던 ESPN 해설자는 ‘할리웃 스타일’로 경기가 끝났다고 묘사했다. 그만큼 미국에게 이날 경기는 극적이었다.
만약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미국이 탈락했더라면 선수들은 물론 축구 팬들까지 통한의 아픔을 맛보았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 주말 슬로베니아와의 2차전에서 주심의 엉터리 판정으로 승리를 놓치는 불운을 겪었다. 또 알제리와의 경기에서도 전반 뎀프시가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로 선언되면서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야 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보던 미국인들은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탄식과 좌절, 그리고 환희와 쾌감을 두루 경험했다. 어떤 극본으로도 이처럼 극적인 기승전결을 연출하기란 불가능하다. 미국의 극적인 회생은 스포츠를 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지 증명해 줬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승부를 둘러 싼 험난한 과정, 그 속에서 겪는 갈등과 아픔, 그리고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쓰라림이 어떤 허구의 이야기들보다도 극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열린 결말이 기대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드라마 시청률은 떨어지는데 반해 스포츠 중계 시청률은 올라가는 추세라고 한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그랬듯이 한국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진 것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뻔한 스토리의 드라마들은 안겨주지 못하는 감동과 짜릿함을 스포츠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뉴스들이 이어지는 세태 속에서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과 위안을 안겨주는 순기능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스포츠 경기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될 수는 없다. 제대로 드라마가 완성되려면 극적인 경기의 흐름과 결과 뿐 아니라 그 속에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어야 한다. 22일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해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룬 태극전사들이 경기 후 흘린 눈물은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적셨다.
시종 5,000만 국민을 조마조마하게 한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마침내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의 뇌리에는 이번 대회를 위해 오랫동안 흘려 온 피와 땀,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은 아직 안 된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묵묵히 견뎌야 했던 어려운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의도된 계산으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지만 스포츠는 이런 계산이나 연출 없이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태극전사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줬다.
한국은 26일 우루과이와 8강 진출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이 드라마에도 각본은 없다. 어떻게 스토리를 풀어가고 결말을 짓느냐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과 감독의 몫이다. 각본 없는 스포츠가 왜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멋진 승부를 펼쳐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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