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영국의 공영 BBC 방송은 1966년 영국 월드컵에 참가해 돌풍을 일으켰던 북한 축구팀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들 생애 최고의 게임’(The Best Game of Their Lives)을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다니엘 고든 감독이 제작한 것으로 북한 대표팀이 영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돌아갈 때까지 촬영된 TV 필름과 신문기사, 그리고 생존해 있는 북한선수 7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분위기와 감동을 그대로 전달했다.
고든 감독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준 1966년 월드컵 골 모음 장면을 보고 북한 선수들의 경기에 감동을 받았고 특히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경기 모습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모티브가 됐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에서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작은 도시인 미들스버러 시민들과 북한팀 간에 형성된 진한 우정이었다.
북한팀이 이 도시의 경기장에서 훈련을 하면서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시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됐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싹텄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격파하고 리버풀에서 포르투갈과 8강전을 가지게 되자 미들스버러 시민 3,000명이 북한을 위해 원정응원에 나섰을 정도이다. 나이든 영국인들은 지금까지도 북한 축구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소년이었지만 이제는 장년이 된 한 영국인은 다큐멘터리에서 “마치 모든 선수들이 말을 타는 기수들처럼 작았지만 혼신을 다해 뛰는 모습이 신비로웠다”고 회상했다.
첫 월드컵 출전이었지만 북한은 이처럼 세계 축구계에 지우기 힘든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북한이 44년 만에 다시 나온 월드컵에서 최강 브라질을 맞아 선전을 펼치며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경기 내용도 내용이지만 북한 선수들의 해맑은 표정과 깨끗한 매너에 대한 찬사도 이어진다.
축구에서 강팀을 상대하다 보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북한은 단 한 장의 경고도 받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어떤 해외 축구인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세계 랭킹 1위인 브라질과 경기하면서 옐로카드 경고 없이 경기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수비 테크닉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깨끗한 매너와 뒤지지 않는 경기력은 북한 하면 ‘핵 말썽꾸러기’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던 세계인들에게 일시적으로 혼란을 안겨주었을 정도이다.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눈물을 흘린 북한의 스트라이커 정대세는 경기 전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브라질과의 경기는 북한에 대해 좀 더 호의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수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이다. 축구선수들이 땀 흘리며 민간외교관 역할을 훌륭히 해 내도 지도자의 도발과 심술 하나면 헛수고가 돼 버린다. 옐로카드 한 장 받지 않고 깨끗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 그리고 레드카드를 받고 국제사회에서 퇴출되기 일보직전인 지도자를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쁜 지도자’는 있어도 ‘나쁜 국민’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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