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의 한 외교부 직원이 내부 전산망에 재외공관들의 공금유용 실태를 폭로하는 글을 올려 한바탕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 그 직원이 폭로한 사례는 사적인 모임에 법인카드 사용하기, 출장기간 늘리기와 출장자 허위 계상, 공관만찬 참석자 부풀리기를 통한 운영비 챙기기 등 나라의 얼굴 역할을 하는 공관장들이 저지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낯 뜨거운 행태였다.
공금과 관련한 이런 부정은 대사관보다는 감사의 강도가 약하고 대민접촉이 빈번한 영사관에서 더 많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령 캐나다 지역의 한 총영사관에서는 총영사가 한인 단체장이나 직원들을 관저로 불러 가정부가 준비한 간단한 저녁식사를 대접한 후 1인당 100달러 만찬으로 영수증을 만들어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감사에 착수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구습과 비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금을 둘러싼 잡음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이 발표되고 재발 방지 다짐이 이어지지만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액수가 미미할 경우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공금유용이 저질러지기도 한다.
이런 행태들은 개개인의 낮은 윤리의식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공금이 지니고 있는 성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공금은 글자 그대로 개인 소유가 아닌 공적인 돈이며 공공이 소유주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가 소홀하기 십상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의 비극’은 공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공원의 화장실을 보자.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가 깨끗이 사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힘들다. 관리와 청소도 집안 화장실처럼 철저히 이뤄지지 않는다. 이른바 ‘임자 없는 돈’이 되다 보니 손을 대고 싶은 유혹이 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한인사회에서도 공금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회원들이 많은 이익단체의 경우 막대한 연 예산을 집행하다 보니 사용내역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용내역이 공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집행부의 사적이 목적을 위한 것이냐가 모호할 경우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공금으로 운영되는 장학재단에서 선발한 장학생 가운데 정실 의혹이 뚜렷한 학생들이 포함돼 물의를 빚은 적도 있었다.
공금을 만지는 사람들은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않겠다는 철저한 자기관리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공금사용과 관련한 일부 단체들의 방침은 본받을 만하다. 한 단체의 경우 이사들이 매년 개인당 수백 달러씩을 식대로 미리 납부한다. 이사회 등 모임이 있을 경우 발생하는 식대는 이 돈에서 지출한다. 남을 경우에는 공금이 들어있는 구좌에 귀속시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선거를 치르지도 못한 30대 LA 한인회장 선관위는 얼마 전 의혹투성이의 결산내역을 내놓았다. 선거와 연관시킨 지출은 그렇다 치더라고 선관위원 차량수리비로 1,800달러를 지출했다는 데는 실소가 나온다. 한인회장 선거의 파행은 이런 선관위원들에게 관리업무를 맡겼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지도 모른다. 공금의 비극이 그대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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