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값싼 임금에도 만족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일에 불만이 있어도 쉬는 시간에 담배를 물고 서로 잡담을 나눌 뿐이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이 겔릭호에서 내려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발을 디뎠다. 당시 하와이 고용주들은 한인은 성품이 온순하고 적은 임금으로도 말을 잘 듣는다고 적었다. 솔직 히 말하자면 싼값으로 부려먹어도 군말 없이 일을 척척 한다는 소리다. 고용주 이윤을 생각할 때 이만한 일꾼이 없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 경제&고용단속연합(EEEC)이 주관한 노동법 세미나를 취재했다. 캘리포니 아 고용개발국(LWDA) 더글라스 호프너 주지사 정책담당관, EEEC 데이빗 도라메 국장, 산업관 계국(DIR) 딘 프라이어 부국장. 노동법 관련기관 고위직인 이들은 한인 고용주에게 노동법 준수를 당부했다.
취재 후 초기 한인 이민자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들이 힘들게 일하고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며 나누었을 이야기는 결코 ‘잡담’이 아니었으리라. 그 잡담을 위 세 명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한인 이민사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한인사회는 미국에서 제법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인사회 경제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네 속담처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부터 캘리포니아에서 노동법 관련 소송을 당한 아시안 업주 중 한인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한인요식업협회·한인의류협회·미주한인봉제협회에 따르면 가장 빈번한 소송과 노동법 단속에 걸리는 경우가 ‘급여명세서 증명부족과 초과수당 미지급, 세금신고 누락 또는 미신고’이다. 최근에는 인격모독을 넘은 성희롱 관련 소송도 늘었다.
취재 중 만난 고용주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한인경제 중심축을 이루는 “히스패닉 노동자들이 약았다”는 비판, 시간당 최저임금 8달러를 주면 일을 안 하기에 “일한 옷감만큼 임금을 줄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변호사들이 일거리가 없어 “노동자들을 꼬드긴다”는 음모론까지 다양하다. 고용주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경제부 기자인지라 때론 이해도 된다.
하지만 소송을 당하고 노동법 단속에 걸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윤만을 강조한 ‘고용주 중심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라는 점을 피할 수 없다. 행여 우리는 100여년 전 하와이 고용주들이 한인을 말 잘 듣는 값싼 노동력으로만 봤듯이, 오늘날 한인사회 노동자들을 똑같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노동법 세미나는 성황을 이뤄 EEEC 도라메 국장은 “노동자를 생각하는 훌륭한 한인 고용주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단속기관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노동법 문의를 항상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각 가정에 노동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더 많은 한인 고용주들이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김형재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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