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본질은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우리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는 환상의 포도주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베버의 음악 ‘무도회의 권유’같은 춤곡을 듣고 있노라면 이러한 승화작용, 꿈처럼 피어오르는 추억이 있다.
- 추억은 대체로 아름답지만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추억이란 때로는 가슴 아프고 그로인해 감상에 젖기도 하지만 추억이란 대체로 즐거움보다는 아픔의 기억이… 다소 과장되어 회상되기 마련이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였다. 수술후 기브스를 떼고 재활치료를 받을 때 였는데, 다양한 환자 중에서 유독 눈에 띠는 소녀가 있었다.
아마 척추에 장애가 있는 듯 보조기를 의지하고 재활치료를 하는 환자였다. 오전 중에는 늘 그녀를 볼 수 있었는데 첫 인상이 무척 예쁜 소녀였다. 우리는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쩐일인지 오후 시간보다는 그녀를 볼 수 있는 오전이 좋았다.
봄이었는지 창밖 화단은 튜울립, 나팔꽃 등 꽃들로 화사했고 봄볕 속에서 한 30분 쯤 찜질을 하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졸음에 빠져들곤 했다. 의사 선생님의 일깨움으로 퍼뜩 잠에서 깨면 오돌오돌 떨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파리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마치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참새같았다고나할까. 이마에는 송송 땀방울이 맺혀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아는 지 모르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늘 새침한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은 왠지 물리치료가 아프게 느껴졌고 그녀가 있으면 고통의 시간도 금세 지나갔다.
당시 형은 어디선가 야외전축을 구해와서는 나팔바지를 입고에 고고춤에 열을 올리곤 했다. 세상이 온통 탐 존스 등 고고 열풍에 휩쓸려 있던 때였다. 남들은 열심히 춤추며 인생의 찬가를 노래할 때 나는 물리치료실을 오가며 그녀의 파리한 모습이나 보면서 인생의 봄을 내면 속에 차곡차곡 접고 있었다.
아, 나의 봄은 언제오려나!. 당시 라디오의 클래식 방송에서는 종종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들려주곤 했는데 봄의 활기라고나할까, 명쾌하면서도 감미로운 이 음악은 물리치료실의 화사했던 화단, 싱그러운 봄볕… 그리고 그녀의 해맑은 모습과 함께 자칫 어두울 수 있었던 나의 소년기를 아름답게 가꾸어준 참 고마운 음악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무도회의 권유’를 쓴 칼 마리아 본 베버(1786-1826)는 어릴 때 부터 무척 약골이었다고 한다. 4살 때 까지 걷지 못했고 성장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신체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베버는 자신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 중의 하나로 ‘무도회의 권유’를 남겼을까? 알 수 없는 아이러니지만 그가 그리고 싶었던 춤은 아마 이 세상의 그런 춤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황했던 마음의 춤이자 영혼의 춤, 아니 그만이 출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춤에 대한 열망… 아마 이런 것들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도회의 권유’라는 춤곡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허약 체질이었던 베버는 40세에 죽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오페라 ‘마탄의 사수’ 등은 독일낭만파 중흥에 앞장서게 한 위대한 작품이었다. ‘무도회의 권유’는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있던 1819년에 완성, 오페라 가수였던 부인 브란트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피아노 곡으로 작곡되었지만 베를리오즈가 관현악곡으로 편곡, 요즘에는 관현악곡으로 더욱 널리알려져있다.
잘 알려진 ‘무도회의 권유’의 내용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면 어떤 무도회장에서 한 신사가 젊은 부인에게 다가가 함께 춤을 추자는, 무도회를 권한다는 내용이다. 부인이 수줍어하며 거절하자 신사는 다시 열심히 간청한다. 부인은 마지 못해 동의하여 거기서 두 사람은 조용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 둘은 동감을 표시하며 손을 잡고 무도장으로 들어간다. 무곡이 시작되기를 조용하게 기다린 둘은 이윽고 무곡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추게 된다. 코다(종말부)는 신사의 감사의 말, 그리고 거기에 화답하는 그녀의 말, 퇴장 침묵 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음악에서 춤곡은 도취적인 요소로 인해 널리 애용되는, 음악에서의 백미이기도 하다. 교향곡의 3악장은 늘 춤곡이 들어가게 되어있고 요한 쉬트라우스의 춤(왈츠)곡 등은 음악에서 새로운 장르로 평가받고있다.
춤은 인생에서 희열을 나타내는 행위라 하겠다. 물론 우리민족의 살풀이등 한을 표현한 것도 있지만 보편적인 춤은 즐거움과 행복의 표현이다. 오레라 ‘엘렉트라’(R. 쉬트라우스 작)에서는 엘렉트라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광란의 춤을 추다 죽고 마는 장면이 나온다.
춤은 그만큼 극단적인 잠재의식의 분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애로스 차원에서는 춤처럼 낭만적인 것도 없다할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춤이 있는가 하면, 베버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영혼의 춤도 있다. 당신의 추억의 춤은 어떤 것이 있나요? 봄의 여왕 5월의 소리에 맞추어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들어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