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묘하다. 뜻대로 되는 일보다는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 주말 화창한 날씨 아래 모처럼 빅베어로 길을 떠났다. 겨울에는 종종 가본 적이 있었지만 봄에는 별로 간 기억이 없다. 주말답지 않게 밀리는 프리웨이를 벗어나 330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웬 일인가. 지난 번 겨울에 쏟아진 비로 길이 끊어져 보수 공사를 하느라 도로를 막아 놓은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동쪽으로 20여 마일을 돌아 38번 도로를 타고 올라갔다. 남가주에 20여년 살았지만 생전 처음 와 보는 길이다. 멀리 돌긴 했지만 새로운 산 풍경에다 사슴 두 마리까지 길가로 내려와 인사를 했다.
예기치 않은 일은 다음 날 벌어졌다. 어차피 330번이 막혔기 때문에 레이크 애로우헤드까지 가는 18번을 타고 돌아올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원래 이 길은 ‘세계의 가장자리’(Rim of the World)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능선을 타고 이어지며 경치가 좋은 길이다.
한동안은 비행기를 타고 가듯 저 멀리 아스라이 속세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달렸다. 그러던 것이 천변만화하는 산속의 날씨답게 갑자기 구름이 밀려오더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에 휩싸이면서 길을 잃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이 산속을 빠져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이리저리 헤매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산 아래로 내려가는 큰 길이 나타났다.
아키라 구로자와 감독의 명작 ‘꿈’ 중 산악인들이 설산을 헤매다 눈보라에 휘말려 얼음바닥에 쓰러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음마녀가 나타나 이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순간 눈보라는 멈추고 눈을 떠보니 베이스캠프는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이런 일이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18번을 타고 내려오면서 펼쳐졌다. 원래 이 맘 때 빅베어는 야생화로 뒤덮인다. 야생 장미, 파이어우드, 스노우플랜트, 야생 컬럼바인, 루핀 등 우리말로는 번역하기도 힘든 꽃들이 도처에 깔려 있지만 이들이 장관을 이루며 한 데 모여 있는 곳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8번 도로 주변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야생 아이리스는 이곳을 남가주 야생화 감상 관광명소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싱그러움이 넘치는 새파란 줄기에 샛노란 꽃들이 앞 다퉈 산언덕과 벼랑을 뒤덮은 모습은 아마 여기가 아니면 보기 힘들 것이다. 은은한 향기마저 차안을 가득 채운다.
사막에 핀 꽃들을 보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빅베어 말고도 LA 북쪽 고먼, 샌타바바라 북쪽 피게로아 산, 인디펜던스 등 이스턴 시에라에 가면 총천연색으로 언덕을 덮은 산꽃들을 만날 수 있다. 남가주 산 속 곳곳에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꽃들은 자연이 주는 크나큰 축복의 하나다. 더 늦기 전 가족과 함께 대자연의 공짜 선물을 받으러 가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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