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은 오랫동안 유럽 이상주의자들의 꿈이었다. 수백 년간 조각조각 갈라져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온천지가 황폐화되는 것을 보아온 유럽인들은 전쟁의 폐해를 막는 최선의 길은 유럽을 통합해 하나의 정치 기구 아래 두는 것이라 믿었다.
같은 기독교 문명권에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이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인다면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시장 통합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를 향한 집념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더욱 강해졌다.
처음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로 시작된 통합으로의 발걸음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로 발전하더니 유럽 커뮤니티(EC)와 유럽 연맹(EU)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1995년 유럽 공통의 화폐인 유로를 만들기로 합의했으며 2002년 1월부터는 유럽 연맹 회원국이 이를 실제로 화폐로 쓰기 시작했다.
유로가 출범하면서 각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일일이 돈을 바꿔야 하는 불편함도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각 나라의 물가가 투명하게 나타나 기업들의 투자와 교역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처음 달러화에 대해 1대 1로 출발한 유로는 세계 투자가들의 회의적인 반응 속에 1유로가 80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곧 유로가 가져올 경제 효과가 널리 인식되면서 꾸준히 상승, 2007년 금융 위기 이전에는 1달러 60센트를 줘야 겨우 1유로를 살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유로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유럽 물건의 단가가 비싸 수출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다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관광 수지도 악화됐다. 이런 현상은 뚜렷한 산업도 없이 관광수입에 주로 의존하면서 후한 사회복지 정책으로 만성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남부 유럽 국가에 특히 크게 나타났다.
경쟁력 있는 산업이 없어 경제는 엉망인데 50세부터 은퇴 연금을 주는 그리스가 최악이고 그와 비슷한 형편인 포르투갈이 그 다음이며 스페인이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복지 예산을 줄여 국가 재정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노조 등의 강력한 반발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다드&푸어는 최근 그리스 국채 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격하하고 포르투갈 등급도 두 단계 낮췄다. IMF와 독일 등 부자 나라의 구제 금융이 없다면 연쇄 국가 부도와 유로존의 파탄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행히 구제 금융이 이뤄진다 해도 재정의 근본적 수술이 없으면 이들 나라가 유로 존에서 쫓겨나거나 유로 존 위기가 재발하는 것은 필연이다. 유로화가 오를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해 보인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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