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4시쯤 LA 국제공항의 톰 브래들리 터미널. 가족·친지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로 왁자지껄 붐비던 터미널 로비 한편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조지아, 어거스타에서 열린 매스터스 토너먼트가 막 끝나고 우승자가 가려진 순간이었다. TV 화면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잘 됐어. 미켈슨이 이겨서 너무 기뻐” “저 사람은 우선 사람이 됐어” “우즈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나왔는지 몰라. 참 뻔뻔하기도 하지” “심리적 부담이 커서 (우즈가)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도 우즈가 경기하는 걸 다시 보니 반갑네” …
아마도 그 시간, 미 전국에서,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대화들이 오고갔을 것이다.
이번 제74회 매스터스 대회는 골프 외적인 요소들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우선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복귀. 팬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시점을 점치며 소위 ‘자숙’ 기간을 가졌던 우즈가 5개월 만에 필드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어 랭킹 2위인 필 미켈슨이 선두를 이어 나가자, 우즈와는 다른 이유로 필드를 멀리했던 그의 개인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미켈슨이 우승컵을 차지하자 세계 랭킹 1위와 2위인 두 사람의 인간적 면모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한 사람에게는 찬사가, 다른 한 사람에게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조강지처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조강치처(糟糠之妻)란 직역하면 술지게미(糟)와 쌀겨(糠)를 함께 먹던 아내, 거친 음식으로 연명하던 가난한 시절의 아내이다. 이런 말이 생겨난 걸 보면 옛날 중국에서 남자들이 웬만큼 살만해지면 본처를 버리고 새 아내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강지처’와 관련, 우즈와 미켈슨은 더 할 수 없이 대조적이다. ‘골프 황제’에서 ‘불륜 황제’로 별명이 바뀔 만큼 많은 여성들과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난 우즈와 달리 미켈슨의 아내 사랑은 지극정성 그 자체이다.
지난해 5월 아내 에이미가 유방암 진단을 받자 그는 PGA 투어 중간에 골프채를 접었다. 아내가 건강이 회복되어서 같이 다닐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골프를 중단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면서 평소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두려움이란 걸 몰랐던 그가 두려움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아내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내의 건강이 문제가 되자 자신을 만년 2등으로 몰아온 우즈 같은 적수는 더 이상 문젯거리도 되지 않더라고 그는 말했다.
미켈슨과 에이미는 1992년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는 4년 후 결혼해 삼남매를 둔 골프계의 대표적 잉꼬부부이다. 골퍼 남편과 15년을 살면서 에이미는 이제 골프에 대해 모르는 게 없지만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프로 골퍼가 뭔지도 몰랐다. 미켈슨이 자신을 ‘프로 골퍼’라고 소개했을 때 “골프 코스 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인줄 알았다”고 한다.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욕심으로 최선을 다한 남자와 투병 중인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남자 - 후자가 승리한 것이 누가 봐도 기쁜 일이다. “심금을 울리는 우승이었다” “착한 사람이 1위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 찬사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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