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콤퓨터 시대… 콤퓨터로 자판기를 두드리다보니 필통이니 연필이니하는 단어들이 까마득한 옛 이야기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연필로 글을 쓰던 일이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땟국물이 줄줄 흐르던 나의 필통에는 몽당 연필이 가득했었다. 절반은 쓰다 남은 것들이요, 절반은 연필 따먹기로 딴 것 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없이 살던 때라 필통에는 항상 몽당 연필들로 넘쳐났다. 그것들을 가지고 책상 위에 줄을 그었던 기억이 난다. 옆에 앉은 짝꿍에게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당시의 초등학교는 2,3학년 때 까지 여자애들을 함께 앉혀놓고 짝꿍을 삼게했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짝꿍은 아주 못생긴 여자아이였다. 좀 와일드하게 나가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먹어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꽃피는 4월… 갑자기 몽당 연필의 추억이 향기롭게 피어오르는 것은 왠일일까? 몽당 연필은 사용할 수 없을만큼 작아지게 되면 결국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가끔은 위험한 장난에 사용되기도 한다. 친구에게 던진다던지 싸울 때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인데, 연필 심은 독성이 매우 강하여 만일 머리에 맞는다거나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반 아이 한 명이 머리에 연필을 맞고 수술까지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몽당 연필을 특히 좋아했는데 이유는 몽당 연필이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작아지게 되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잘 하는 과목은 미술이었는데 쓱쓱 몇번 선을 긋고 나면 대단한 그림이 탄생하곤 했다. 내가 봐도 다소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살짝 그림자만 주어도 입체감이 확 살아나는 데도 다른 녀석들은 그 숨은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중학교 때 까지 내 그림을 교실 벽면에 장식시킬만큼 그림을 잘 그렸고 또 좋아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나는 몽당연필이나 때묻은 문구들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왔다. 누가 쓰다남은 연필, 볼펜, 아니 다른 문구라해도 어쩐지 그 쓰다남은 것들이 좋았다. 커서도 직장에서 가끔 책상을 옮길랴치면 그 자리에 남아있는 연필 혹은 쓰다남은 지우개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내 것으로 쓰곤 했다. 그런데 그 전 주인이 여성일 경우 이상한 버릇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여성들은 꼼꼼한 성격에다가 의외로 남성 못지 않게 자기의 영역을 확실하게 표시하고 싶어하는 소유의 본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쓰다남은 연필, 자… 하다못해 지우개 하나에도 자신의 이름을 일일히 붙혀 놓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한눈 파는 것(?)을 불허하는 매우 강렬한, 물건에 대한 모성애(?)이라고나할까,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이러한 쓸쓸한 욕망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어쩐지 살아 숨쉬는 여유가 느껴진다고나할까, 이름도 바꾸지 않고 내것으로 쓰곤했다. 나는 누구처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없는 속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버린 것, 쓸모 없어진 것, 고물, 고가구, 낡은 LP 판… 이런 것들은 왠일인지 많이 소유할 수록 느끼한 팽만감 보다는 애틋한 옛정(?)으로 더욱 새록새록해진다. 사람은 무엇을 소유하느냐, 혹은 소유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의 헌 LP 판 중에는 다소 너덜너덜해진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이 있다. 디스크 쟈켓 표지에 커다란 ‘호두까기 인형’이 그려진, 어딘지 장난끼 가득했던 시절의 동심이 피어오르는 작품이다. 꽤 긴 ‘호두까기 인형’의 전곡을 자주 들을 순 없고 대개 전반부 마지막 부분을 듣곤한다. 사실 ‘호두까기 인형’은 후반부 춤곡이 별미지만 나는 어쩐지 전반부 마지막 장면 인형이 왕자로 변하여 클라라 소녀와 춤추는 부분이 황홀하게 좋곤했다. 쥐들과 싸우는 전쟁장면도 좋고…. 아마도 이부분이 환상과 현실의 대치점, 즉 꿈이 현실로, 현실이 꿈으로 변하는 삶의 가장 신비로운 부분을 터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실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아마 ‘호두까기 인형’이 그의 진실을 그리고 싶은 몽당연필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극중 클라라 소녀는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환상이 있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 꿈(인형)이 동생에 의해 두 동강이 났을 때 그 꿈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로 변하여 왕자님과 아름다운 춤나라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진심이란 부러졌을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호두까기 인형은 무엇일까? 클라라처럼, 비록 부러진 몽당 연필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 것은 더 이상 몽당 연필이 아니라 꿈을 그리는 도구다. 삶이 어렵라도 꿈을 그릴 수 있는 도구(진실)만 있다면 삶은 얼마든지 희망으로 밝아 질수 있다. 당신의 추억의 그림은 어떤 것이 있나요? 마음의 몽당연필로 ‘호두까기 인형’을 그리며, 음악세계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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