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평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진 이 평원은 동물의 낙원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마사이 부족 말로 ‘끝없는 초원’을 뜻하는 세렝게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이 ‘세계 10대 자연 비경’으로 꼽히는 것은 동물 수도 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동물들의 이동 때문이다. 건기와 우기로 뚜렷이 갈라지는 이곳 기후 때문에 동물들은 매년 이동을 반복한다. 100만 마리가 넘는 윌더비스트 떼들이 초원을 가로지르고 악어에 잡혀 먹히면서 강을 건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곳 동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대규모의 이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먹이를 찾아서이다.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바삭바삭 마른 대지가 쏟아지는 빗방울과 함께 푸른 옥토로 변하는 것은 대자연의 기적 그 자체이다. 이곳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1순위로 꼽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남가주에 사는 사람들은 멀디 먼 아프리카까지 가지 않고도 요즘 이런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5번 프리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는 것이다. 해마다 이때쯤 유명해지는 프레스노 인근의 ‘블라섬 트레일’까지 갈 필요도 없다. 베이커스필드를 벗어나면 보통 때는 볼품없는 갈색 황무지이던 곳이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도 파릇파릇 생기가 돈다. 몇 년래 최대로 내린 비 덕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벚꽃과 꼭 닮은 흰 꽃이 흐드러지도록 매달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과수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홍매화와 닮은 짙은 핑크빛 꽃송이도 보인다. 시속 80마일로 한 시간을 달려도 꽃밭은 끝나지 않는다. 한국이 자랑하는 광양과 하동의 매화 마을도, 앤틸롭 밸리의 파피 꽃밭도 여기에 비하면 어린 아이 장난이다. 수억 송이는 족히 되는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몬드 꽃이란다. 중동이 원산지인 아몬드는 지중해에 널리 퍼졌다가 18세기 스페인 수도사들에 의해 가주에 수입돼 지금은 가주를 대표하는 농산물로 자리 잡았다.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오는 가주 기후가 이들이 자라는데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아몬드는 100%가 가주 산이고 전 세계에서 나오는 아몬드 80%가 가주 산이다. 가주는 ‘세계 아몬드의 수도’라 불려 손색이 없다. 가주 내 아몬드 농장수가 6,000개가 넘는데도 나날이 늘고 있다. 프리웨이 주변에 갓 심은 묘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처럼 아몬드 농사가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몬드의 건강식품으로서의 효능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비타민 E와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아몬드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심장질환과 당뇨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원래 LA는 사막이었다. 그것을 멀리 오웬스 밸리와 콜로라도 강에서 물을 끌어다 이런 도시를 만든 것이다. 동쪽으로 한 두 시간만 달려 팜 스프링스 쪽으로 가 보면 물 없는 남가주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를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는 이런 사막을 순식간에 ‘꽃의 카펫’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몇 년이고 땅속에서 대지의 열기를 묵묵히 견디고 있다가 비소식과 함께 형형색색으로 폭발하는 사막의 꽃들. 그보다 더한 대자연의 경이는 없다.
올해 유난히 많이 내린 비로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가 좀 많이 쏟아질 것이란 예보만 나오면 내 집이 산사태에 묻히는 것은 아닌지, 또 소개령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이다.
그러나 이는 대자연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 치르는 작은 희생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은 결국 비에서 온 것이고 물이 없이 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비를 많이 내려준 이번 남가주의 겨울은 대다수 생명체에게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민경훈 /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