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는 바이킹들의 전성기였다. 그들 말로 ‘원정가다’라는 뜻답게 바이킹족은 서유럽뿐만 아니라 시실리와 콘스탄티노플,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그야말로 멀리 다니며 살인과 약탈, 방화를 일삼았다.
당시 서유럽의 변방이던 영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9세기 말에는 웨섹스 왕국을 제외한 섬 전체가 덴마크 출신 바이킹 손에 떨어졌다. 훗날 세계를 제패하게 될 앵글로 색슨 족의 운명도 여기서 끝나나보다 싶던 그 때 웨섹스의 왕 알프레드는 불같이 일어나 878년 에단둔 전투에서 덴마크 출신 바이킹들을 물리치고 영국을 구한다. 그가 지금까지 영국 왕 중 유일하게 ‘대왕’(Alfred the Great) 칭호를 갖고 있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만약 그가 졌더라면 지금 세계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덴마크어가 됐을 것이며 한국에서는 영어 대신 덴마크어 교습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이킹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10세기말 카누트 왕 같은 이는 영국 북부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4개국 왕을 겸하는 해상 왕국을 건설했다. 이들은 그 후에도 영국에 오래 머물며 언어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 흔적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 ‘스키’와 ‘스케이트’다(‘하늘’을 뜻하는 ‘sky’를 포함 ‘sk’로 시작되는 모든 단어는 덴마크가 어원이다).
전문가들은 스키와 스케이트 모두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발상지로 보고 있다. 스키의 경우는 기원전 5,000년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스키를 타는 모습을 그린 조각이 노르웨이에서 발견됐고 역시 기원전 2,500에서 4,500년 사이 것으로 보이는 스키가 스웨덴 늪지대에서 출토됐다. 최초의 스케이트는 4,000년 전 지금의 핀란드 남부에서 타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원 1,200년경에는 노르웨이 부족 간에 전쟁이 벌어져 어린 후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아기를 싼 포대를 끌고 34마일의 눈길을 스키로 달린 기록이 있다. 1932년부터 노르웨이에서는 이를 기념해 매년 34마일 구간의 스키 크로스컨트리 대회를 벌인다.
스웨덴에서는 1922년부터 1520년 독립 전쟁의 영웅 구스타브 바사가 덴마크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해 56마일의 눈길을 스키를 타고 도주했다 군대를 일으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스키 대회가 열린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스키 마라톤이다.
이런 오랜 전통 덕에 동계 스포츠는 북유럽,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가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 지금까지 역대 동계 올림픽 통산 전적을 놓고 볼 때 단연 1위는 노르웨이다. 이번 밴쿠버 대회에서 인구 470만의 노르웨이는 금메달 100개, 금은동 합계 300개 기록을 돌파했다.
노르웨이 인구의 60배가 넘는 미국은 저만치 떨어진 2등이다.
같은 스칸디나비아 가운데서도 이처럼 노르웨이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와는 달리 노르웨이인들은 시골에 많이 살아 집만 나가면 바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호수와 스키를 탈 수 있는 산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국가에서는 어려서부터 유망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 워낙 메달을 많이 따기 때문에 노르웨이 국민들은 동계 올림픽에는 나가기만 하면 메달은 당연히 따오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번 밴쿠버 대회에서 한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훌륭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북구의 작은 나라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스포츠 강국으로 자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약간의 균형 감각도 필요할 것 같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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