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문득 근처에 위치한 교회에 가서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Labyrinth가 교회 앞 마당에 그려져 있어서 가끔 찾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교회 교육관 한 쪽 벽에 위치한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우연이었다. “어, 낯익은 얼굴이다.” 그랬다. 지도교수였다.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GTU)의 조직신학 교수인 테드 피터스(Ted Peters)를 초청하는 안내글이었다. “미국의 판넨베르크”라 불리는 그는 “과학과 신학계”에 있어서 그야말로 스타다. 그를 초청한다는 것이다. 누가? 교회 안에 소속된 “Science and Religion” 모임에서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런 모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긴 한숨이 나왔다. 부러웠다. 나중에 테드 피터스 교수에게 여쭤봤다. 그런 모임에 자주 가시냐고. 매번 같은 교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가신단다. 그게 미국 교회의 현실이고 수준이었다. “뭐 신학교 교수를 초청하는 게 대수라고!” 그게 아니다. 바로 “과학과 신앙”에 대해 미국 교회가 오랫동안 고민해 오고 있다는 것이 대수라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는 “창조과학회”를 초청해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느니 하면서 과학으로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가? 또한 그것이 마치 “과학과 신앙”의 뜨거운 만남인 것처럼 칭송하고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공감하듯이 우리는 “과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장회익 교수의 말처럼 “과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분법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는 19세기 이전의 신학을 배운 목회자가 21세기를 살아갈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설명하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지배적이며, 냉정하고 통제적이며 이성적으로서 군주적 모델에 기반을 둔 “하나님 이해”와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과는 상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교인이 겪는 혼돈과 갈등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교회에 대한 신뢰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로지 감정에 호소하고, 그것이 마치 성령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포장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속의 음악도, 문화도 이성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교회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교회에서 “역사”가 해석되어야만 하듯이 시대 정신인 “과학”도 말해져야 되는 건 아닐까.
가끔 마켓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계신 분들을 보게 된다.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나 묻고 싶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과 진지하게 세상에 대해 대화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대화”는 결과를 예상하지만 미리 결과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최종적인 결과를 미리 정해 놓는다면 더 이상 “대화”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양자물리학의 전제와 비슷하다.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살펴 본 자연의 “실재”는 결코 “결정론적”이지 않다. 필자가 생각할 때 하나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미래를 결정하지 않으신다. 정해놓은 각본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뉴튼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빚어놓은 산물일 뿐이다.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다만 미래를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양자물리학이라는 체계에 의해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양자물리학도 한 시대의 산물이겠지만 과거의 어떤 도구보다 더욱 견고하고, 더 폭넓게 사용되는 것도 없을 것이라는 게 현대 자연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인 거 같다. 물론 일관된 범주로 구성된 단 하나의 집합이 인간 경험의 풍부한 다양성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이는 뉴튼을 극복한 양자물리학도 마찬가지다. 한계를 지니고 있고 부분적일 뿐이다. 다만 “모델”일 뿐이다.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모델과 생각”이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도 마음을 돌이키는가?”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기도를 “대화”, 혹은 “사귐”이라고 배웠다. 그렇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해야 한다. 한 쪽이 마음을 닫아 놓는다면 대화가 되겠는가? 생각해 보시라. 내가 마음을 닫고 있는지, 그분이 닫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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