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으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은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다. 식민주의와 전체주의와 싸우는데 일생을 바쳤으며 단지 펜대를 놀리는데 그치지 않고 스페인 내전 때는 직접 총을 들고 공화군 편에서 싸웠다.
그러나 그는 ‘진보’의 환상에 빠져 ‘진보’자만 붙으면 모든 허물을 덮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많은 지식인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허구와 위선을 누구보다 통렬히 비판했다.
그의 주요 작품인 ‘동물 농장’을 보면 농장주의 압제에 저항해 들고 일어나 농장을 접수한 동물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가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혁명을 주도한 돼지들은 점점 과거의 농장주와 닮아 간다. 나중에 농장주와 술을 마시며 거래를 하는 돼지들의 모습은 농장주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악과 ‘싸우면서 닮아가는’ 문제는 공산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공통된 현상이다. 중국사에서 폭군의 전형인 하나라 걸왕을 무너뜨리고 탕왕이 세운 은나라는 폭군 주왕으로 망하고 그를 쫓아낸 무왕이 세운 주나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몰락한다. 그 후 2,000년간 중국의 역사는 이 패턴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 세력이 오래 집권하면 특권의식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자신이 왜 권력을 갖게 됐는지를 잊어버린다. 1994년 민주당이 그랬다. 집권 클린턴 행정부는 물론이고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사실상 의회 권력을 독점해온 민주당은 기득권에 안주하며 산적한 미국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하원의장이 꿈이던 뉴트 깅그리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들어줬고 그는 ‘미국과의 계약’이란 아이디어를 들고 나와 공화당을 연방 하원 다수당으로 만드는 돌변을 일으켰다. 당시의 정치적 변화는 ‘공화당 혁명’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었고 그 여세를 몰아 1996년에는 웰페어 개혁이란 기념비적 업적을 낳았다.
그러나 그 후 선거구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소위 ‘포크 배럴’ 법안에 중독된 공화당은 적자가 얼마가 나든 상관하지 않고 연방 예산을 늘리기 시작했고 부시 대통령 집권 말기에는 ‘테러와의 전쟁’에다 불황까지 겹쳐 국채가 천정부지로 늘어났다. 현재 미국의 재정 적자는 향후 10년간 매년 1조 달러씩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고스란히 후대가 갚아야 할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된다.
1994년 깅그리치를 비롯한 공화당의 가장 큰 약속이 ‘작은 정부’였던 점을 상기하면 공화당은 스스로를 철저히 배신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6년 선거에서 참패해 민주당에 다수 의석을 내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공화당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집권 2년차를 맞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와 4년째 의회 다수당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민주당의 무능에 대한 미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화당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지난 주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파 대회에서 토크쇼 호스트인 글렌 벡은 공화당을 아직 바닥까지 오지 않은 알코올 중독자와 기자회견 전의 타이거 우즈에 비유하면서 진정으로 참회하고 다시 태어날 것을 촉구했다. 1만 명이 모인 이날 모의 투표에서 ‘작은 정부’의 열렬한 지지자인 론 폴 연방 하원의원이 미트 롬니를 제치고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차지한 것도 이채롭다.
‘큰 정부’는 낭비하는 정부다. 정부 돈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헤프게 쓰기 쉽고 쓴 다음에는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노동자들이 땀 흘려 얻은 빵을 뺐지 않는’ ‘검소한 정부’를 이상으로 삼았고 이는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 가슴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공화당이 정녕 차기 집권을 꿈꾼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미 국민의 용서를 비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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