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 휼렛패커드 최고경영자를 지낸 칼리 피오리나의 남편 프랭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하우스 허즈번드’이다. 그는 바깥 일로 바쁜 아내의 뛰어난 능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아내의 성공을 위해 전업주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사람이다.
1984년 통신회사인 AT&T에서 함께 일하던 칼리와 사내 결혼한 프랭크는 “아내는 언젠가 대기업의 CEO가 될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아내의 능력을 일찍부터 알아봤다. 물론 직급도 아내인 피오리나가 더 높았다.
그는 아내의 CEO 가능성이 엿보이던 1998년 과감하게 다니던 직장(당시 그의 직급은 부사장이었다)을 때려치우고 전업주부로 변신했다. 육아 등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본격적인 외조에 나선 것이다. 그 덕분인지 아내 피오리나는 얼마 후 휼렛패커드 CEO에 선임됨으로써 남편의 외조에 보답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자신이 쓴 노래 가사들처럼 진보적이고 낭만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였는데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는 전위 예술가이자 열렬한 여성해방론자였던 6살 연상의 아내 오노 요코의 영향이 컸다. 여성해방에 대한 노래를 여러 곡 만들기도 했던 레논은 1975년 아내와 역할을 바꿔 자신이 전업주부로 들어앉겠다고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레논은 정말 그 이후로 아들 숀의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다. 노래 뿐 아니라 행동으로 페미니즘을 보여준 것이다. 레논의 영향 때문인지 전업주부 역할을 자청하는 남편들이 꾸준히 늘기 시작해 현재 미국의 하우스 허즈번드는 3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는 물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급증하고 경제력이 크게 신장된 데 따른 것이다. 19일 발표된 퓨리서치 조사에서는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버는 가정이 22%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70년의 4%에서 5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21세기는 흔히 ‘3F의 시대’라고 한다. 즉 여성성(feminine),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 등 여성적 특성들이 부각돼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사회 각 분야, 특히 전문직에서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인사회의 경우에도 이민사회라는 특성 때문인지 여성들의 경제적 기여가 남성들 못지않다. 특히 부부가 같이 일하는 자영업에서는 아내가 차지하는 역할비중이 남성들을 훌쩍 뛰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은 특히 다운타운에 가 보면 쉽게 확인 된다 .한국 여성들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뛰어난 적응성이 이민사회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남녀의 성역할에 사로 잡혀 아내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에 괴로워하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 집안의 가계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사를 해 보면 고개 숙인 남편의 스트레스보다 돈 더 버는 아내의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는 성역할도 퓨전화 되고 있다.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집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내와 남편은 획일적인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관계라는 ‘파트너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부부들을 위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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