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로 107주년을 맞은 미주 한인 이민사는 기금 모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막노동자로 16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삶을 시작한 한인 이민자들은 1910년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그 박봉에서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독립 운동 자금으로 댔다. 7,000여 한인 노동자들이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낸 돈의 총액이 200~300만 달러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한인들의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렇게 모은 돈은 독립 운동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초창기부터 불분명한 사용과 낭비, 부정이 끊이지 않았다. 이승만과 함께 하와이 독립 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던 박용만파의 부정을 이승만이 밝혀내 그의 위신이 실추되면서 양자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무장 투쟁을 주장하며 독립군을 조직해 훈련까지 시키던 박용만은 결국 하와이를 떠나 중국으로 갔다 거기서 친일파로 몰려 암살당하고 만다.
애써 모은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70년대 이후 본격적인 한인 이민이 시작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 간 한인 사회에서 숱한 모금 활동이 벌어졌지만 그럴듯한 결과가 남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1992년 미주 이민 사상 최대 비극 4.29 폭동이 터지자 LA 한인 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거액을 모아 줬다. 이렇게 모인 돈으로 재단을 만들고 빌딩을 사고했으나 건물을 잘못 사는 바람에 손해만 봤으며 남은 돈은 관리하는 사람들 일가친척 장학금으로 전용되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코리아타운 치안을 위해 꼭 필요 하다는 이유로 추진됐던 준경찰서 건립 사업도 그렇다. 수십만 달러라는 거금이 모였지만 나중에 흐지부지되면서 이 돈은 이 사업 추진 관계자 월급으로 다 날아가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 한인 2세들의 역사의식 고취를 내걸고 거창한 기금모금 사업을 벌인 이민사 박물관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LA 한인상공회의소가 수십만 달러를 들여 세운 다울정은 코리아타운의 흉물로 남아 있다. 수천만 달러 규모로 추진되던 한국 정원 사업도 총영사가 바뀌면서 사실상 한국 정부 지원은 물 건너간 채 표류하고 있다.
UC 리버사이드에 세우기로 한 김영옥 연구소 설립을 놓고 추진자 측과 재미동포 재단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추진자측은 한국 정부가 예산으로 배정한 300만 달러를 왜 집행하지 않느냐고 성화고 재단 측은 한인 사회에서 모금하기로 한 100만 달러 모금 기간을 10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만약 성사가 안 됐을 때 환수하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맞서고 있다.
한국 정부의 한인 사회 지원은 원칙적으로 환영해야겠지만 모금에 관한 한인 사회의 트랙 레코드를 볼 때 재단을 탓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 한인 사회가 100만 달러를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UC 리버사이드가 300만 달러의 매칭 펀드를 내놓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추진자 측은 100만 달러 모금 대상을 한인사회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소식이라는데 올바른 결정이라 본다. 거금을 모아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데 많은 한인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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