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년부터 1763년까지 계속된 ‘7년 전쟁’은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고 불린다. 유럽과 아메리카, 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 결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주와 인도 등 광대한 땅이 영국령이 됨과 동시에 세계의 주도권도 영국에게 넘어갔다.
캐나다를 먼저 개척했던 프랑스는 이 넓은 땅을 넘겨주고 대신 마르트니크, 과달루프, 세인트 루시아 등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를 얻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는 손해 보는 장사로 여겨지지 않았다. 쓸모없는 ‘눈 덮인 불모지’ 대신 값진 사탕수수 농장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바다에 티끌처럼 뿌려진 이들 섬들은 크기와는 비할 수 없는 부의 보고였다. 작은 섬 하나에서 나오는 설탕 판매 수익이 캐나다 전체에서 얻는 돈보다 많았다. 17세기 네덜란드 인들도 자신들이 개척한 뉴 암스테르담(현 뉴욕)을 영국에 넘겨주고 대신 설탕 생산지인 남미의 수리남을 택했다. 서유럽인 가운데 가장 먼저 대양 항해에 나섰던 포르투갈 인들이 역시 제일 먼저 노예무역에 손을 댄 것도 대서양 여러 섬 사탕수수 밭에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리브 해의 여러 섬 중 설탕 생산의 중심지는 히스파니올라 섬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두 번째 항해 때 발을 디딘 이 섬의 서쪽은 사탕수수 재배에 필요한 조건을 골고루 갖춘 천혜의 요지로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곳곳에 세워졌다. 이곳이 바로 지금 금세기 최악의 지진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이티다.
원주민인 타이노 족(‘아이티’는 원주민 말로 ‘높은 땅’이라는 뜻이다)이 유럽인들의 전염병으로 거의 전멸하자 주민들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로 채워졌고 그 결과 지금 아이티 주민 대부분은 흑인이다. 한 때는 카리브 해 최대의 부를 창출하던 이 나라가 이제는 중남미 최빈국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곳이 됐지만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18세기 말 이곳 흑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백인들을 내몰고 독립 국가를 건설했다. 흑인 반란으로 노예가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독립국을 세운 것은 이것이 처음이고 그 후에도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반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투생 루베르튀르는 노예 출신이지만 프랑스 계몽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자유, 평등, 박애가 실천에 옮겨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게릴라 지도자로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던 그는 400만 흑인들을 조직화 해 강한 군대를 만들며 이 땅을 영구 식민지화 하려던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군대를 차례로 무찌른다. 나중에 그는 프랑스 군대에 잡혀 프랑스 본국으로 끌려가 그곳 감옥에서 숨을 거두지만 아이티의 독립은 그 후계자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선구자를 배출한 나라임에도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아이티는 30번이 넘는 쿠데타 등 정정 불안이 계속되며 혼란에 혼란을 거듭해왔다. 20세기 들어서는 20년간 사실상 미국 지배하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부두교를 장기 독재에 악용한 뒤발리에 부자 왕조에 시달렸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아리스티드 정부가 들어섰으나 두 차례나 쿠데타로 권좌를 내주고 망명길에 오르는 등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아리스티드는 현재도 망명중이다.
올 1인당 연평균 국민소득 800달러의 아이티는 중남미 최빈국에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국민 80%가 빈곤층이고 실업률이 60%에 이르는 나라. 좀처럼 구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첫 출발이 좋아도 후손들이 정치를 그르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판에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백만 사상자가 발생한 대지진까지 겹쳤다. 어렵게 흑인이 첫 독립 국가를 세운 이 나라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신만이 알 일 같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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