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를 쪼개면 엄청난 힘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핵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어니스트 러더포드다. 1917년 그는 런던에서 알파 입자를 질소 원자에 충돌시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양자를 방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1934년 로마에서 첫 핵분열을 성공시킨 엔리코 페르미는 미국에 이민와 시카고에 첫 원자로를 건설한다. 그의 연구는 1945년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가공할 힘을 지닌 핵분열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평화를 위한 원자’ 성명을 통해 미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그러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를 처음 세운 나라는 영국이었다. 1954년에는 러시아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에 들어갔고 미국에서는 그 후 3년 뒤인 1957년 펜실베니아에 세워진 시핑포트 발전소가 최초다.
발전소 건설 시기는 늦었지만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국이다. 미 전체 전기의 5분의1이 원자력 발전으로 얻어진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이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프랑스를 따라갈 나라는 없다. 프랑스 전기의 80%는 원자로를 가동해 만든다. 그 뒤를 후발주자인 일본이 30%로 뒤쫓고 있다.
프랑스에 이처럼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안전관리 덕이다. 프랑스 주민들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에서의 원전 건설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고 정부도 안전성에 대한 검사와 홍보를 열심히 해 마을 근처에 원전이 들어서도 별 반대가 없다.
70년대 석유 위기를 겪으며 잘 나가던 원자력 발전은 1979년 펜실베니아 스리마일 아일랜드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겪으며 위기를 맞는다. 세계 곳곳에서 원전 반대시위가 일어나고 체르노빌의 피해를 직접 입은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은 아예 원전 포기를 선언해 버린다.
그러나 최근 지구 온난화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면서 핵 발전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온실개스 방출을 막으면서 충분한 에너지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핵 발전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원전 강국인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을 제치고 UAE로부터 무려 400억달러에 달하는 원전 공사계약을 따냈다. 원전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함께 경제성이 필수다.
한국은 짧은 공기와 낮은 단가 등에서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안전성만 확보한다면 블루 오션인 원전시장에서의 장래는 밝다. 이번 수주는 한국의 새로운 도약을 세계에 알리는 쾌거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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