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있다. 입으로는 신의 진리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집권자 편에 서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을 도운 성직자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파라오를 신으로 모시며 국민들을 착취한 이집트의 승려들부터 농노들 위에서 사실상 신으로 군림하며 호의호식했던 중세의 교황들, 귀족과 함께 인구는 극소수지만 국부의 대부분을 독점했던 프랑스 대혁명 전의 사제들이 그 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대의 예언자들이다. 이들은 오직 야훼에 의지해 집권자의 잘못을 비판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민중’까지 꾸짖었다. 종교 지도자가 권력에 충성하기는커녕 도전자로 나서 살아남고 오히려 존경까지 받은 것은 아마 이들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특수성이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중앙집권적 왕권이 확립된 사회가 아니라 각각 특성이 있는 12개 지파가 모인 연합체였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야훼 신앙이었고 야훼의 대변자인 사제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블레셋 인을 비롯한 외적의 공격에 직면한 이스라엘 부족들이 왕을 세울 것을 요구하자 사무엘은 “왕은 너희에게 세금을 물릴 것이며 아들은 뽑아 군인으로, 딸은 시녀로 삼을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이들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무엘은 결국 이들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락, 사울을 왕으로 삼는다.
그 후 사울이 야훼의 뜻을 어기자 그는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새 왕으로 삼는다. 진짜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윗은 한 때 사울의 암살 기도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 편으로 도주하기도 하지만 사울 왕이 블레셋 군과의 싸움에 져 전사하자 결국 왕위에 오른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과거 어느 때보다 넓히고 국력을 키운 유능한 왕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함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의 최대 오점의 하나는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탐내 그를 사지에 보내 죽인 후 아내를 차지한 것이다. 선지자 나단이 가난한 자의 새끼 양 한 마리를 빼앗은 부자의 비유로 다윗을 꾸짖자 다윗은 참회하고 눈물을 흘린다. 나단과 함께 권력에 대해 바른 말을 하는 선지자의 전통은 자리를 굳히게 된다.
기원전 8세기는 선지자의 전성시대였다.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해 기독교에서 최고의 선지자로 추앙받는 이사야를 비롯 아모스와 호세아, 미가 등이 부와 권력의 횡포를 지탄하고 고아와 과부, 약자에 대한 보살핌을 호소했다.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하라”고 외쳤던 아모스와 “내가 자비를 원했고 제사를 원하지 않았다”던 호세아, 그리고 이들과 이사야를 종합해 “야훼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야훼와 함께 겸손히 걷는 것뿐”이라고 말한 미가가 이 때 활약했다.
미가의 이 말은 유대교 가장 높은 가르침의 요약이며 예수의 ‘가장 큰 계명’과도 일치한다. 정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자비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말로 ‘정의’는 ‘체덱’이라고 부른다. 이 말에는 ‘자비’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정의와 자비는 근본적으로 하나며 자비가 빠진 정의나 정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자비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하루 3번 기도하며 ‘세상을 고치라’(tikkun olam)를 외친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베풀고 세상을 보다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새해를 맞는 모두의 결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새해가 아니라 평생을 사는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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