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지 1년여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고 현재 120만부 가량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인데, 그 여파로 인문관련 서적들의 관심과 판매도 올랐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가족간의 유대가 많이 약해지고, 이제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엄마들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현 시대에는 드문 소설이지만, 중.장년층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대중들의 감수성을 건드린 소설도 드물 듯 싶다. 출간되자 마자 화제였던 이 책을 내가 읽은 것은 올 봄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그 때나 시간이 흘러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지금이나,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아픈 소설이다.
소설의 첫 장은 평생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살고,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엄마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들에게 없으면 가장 큰 공백을 깨닫게 되는 가장 낯익고 소중한 존재인 공기와 물, 대지처럼, 어느날 사라져버린 엄마의 빈 자리는 가족들의 자책과 후회 만큼 점점 커져만 간다.
엄마는 치매로 집을 잃고 길 위를 떠돌며 점점 잊혀져가는 기억들 속에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추억의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가는데, 자아와 존재감 없이 평생을 산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 장 ‘또 다른 여인’에서 비로소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를 지니고 그녀만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했던 엄마에게도 이루고 싶은 소녀의 꿈이 있었고, 아무도 몰래 가슴 속에 간직했던 여자로서의 사랑이 있었고, 가족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욕구가 있었음을 말이다. 엄마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면 부엌에서 접시를 던져 박살을 내고는 속 시원해 했고,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고모에게 ‘난 이제 이 집을 나갈라요……’ 하면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 달라고 한다.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 오두막집을 찾아간 엄마가 그 곳에서 그녀의 엄마를 만나는 마지막은 깊은 문학적 감동을 준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소설 속 이 부분은 아들 예수의 주검을 무릎에 안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 ‘피에타’상의 성모 마리아의 슬픔이 연상되는데, 작가는 그 앞에서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간절한 염원과 함께 엄마를 부탁한다며 소설을 맺는다.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을 읽은 나로서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과 가족관계나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신선함은 덜 했지만, 이 소설은 가장 신경숙 다운 문학적 감수성이 잘 드러난, 그녀의 다른 많은 소설들은 결국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던, 종착역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의 회귀본능과 그리움을 지니고, 마음껏 치대고 기댈 수 있던 어린 날의 평화로운 안식처를 희구하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엄마란 존재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여자로서의 꿈과 소망을 가슴에 안고 한 인간의 생명을 낳고 기르고 가장 큰 사랑을 주는 존재의 근원이기에, 이 소설은 우리들 가슴 속에 잠자고 있는 사랑을 일깨워 주고,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들이 갈구하고, 또 가족들 사이에 필요한 것은 세상살이에서 얻은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고 무릎에 감싸안아 주는 사랑, 바로 ‘연민’과 ‘자비’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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