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불린다.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맬더스의 ‘인구론’을 읽고 토마스 칼라일이 붙인 이름이다. 아무리 연구해 봐야 결론이 비참 하게 날수밖에 없는 학문이란 뜻이다.
그러나 맬더스의 예측은 들어맞지 않았다 농업 생산 양식의 개혁으로 농산물이 인구 증가 속도를 능가하면서 인류는 지금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인구 과밀과 기아가 아니라 저출산과 다이어트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일지 모르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이 학문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평생 독신이었지만 대학 교수와 자유무역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관세청장을 지내며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인생을 즐겼다.
증권 브로커 출신으로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며 확실한 이론”으로 평가받는 무역에 있어서의 비교우위설을 주장한 데이빗 리카르도는 주식 투자로 떼돈을 벌었고 20세기 최대 경제학자의 하나인 케인즈도 성공적인 환투기 등으로 1,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 문화 사업을 후원하는가 하면 러시아 발레리나와 결혼해 즐겁게 살았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셋을 들라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튼 프리드먼, 그리고 폴 새뮤얼슨이 꼽힌다. 학문적으로는 서로 다른 이들이지만 공통점도 많다. 첫째는 셋 다 시카고 대학과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배우거나 가르쳤다. 두 번째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1970년 미국인으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새뮤얼슨을 필두로 1974년에는 하이에크가, 1976년에는 프리드먼이 각각 받았다.
세 번째는 모두 유대계라는 점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친척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에크, 헝가리 이민 1세 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드먼, 그리고 폴란드 이민자 집안인 새뮤얼슨 모두가 유대인 출신이다. 새뮤얼슨의 제자로 얼마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도, 하버드 총장을 지내고 지금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고문인 래리 서머스도 그의 조카로 유대인이다.
네 번째는 세 사람 모두 장수를 누렸다는 점이다. 하이에크는 92세, 프리드먼은 94세까지 살았고 지난 주말 타계한 새뮤얼슨도 9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프리드먼은 죽기 직전 경제학자인 아내와 자신의 긴 삶을 돌아보며 ‘두 운 좋은 사람들’(Two Lucky People)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셋 모두 오랫동안 보람 있는 삶을 산 정말 운 좋은 사람들이다.
이 세 명 중 한국인에 가장 친숙한 인물은 새뮤얼슨이다.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치고 그의 경제원론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 1948년 처음 나온 이 책은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400만부가 팔렸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서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새뮤얼슨은 초기에는 ‘소련식 계획 경제도 자본주의에 못지않는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으나 후에 이것이 잘못임이 밝혀지자 개정판에서 이를 인정하는 용기를 보였다. 그의 교과서가 19판을 찍으며 지금까지 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런 정직함 때문이다.
새뮤얼슨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제자로 지금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의 “경제학의 거인”이란 평을 비롯,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명예와 업적을 함께 남긴 값진 삶을 살다간 그의 명복을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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