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란드 에머릭은 ‘재난 영화의 왕’이라 불릴만 하다. 그가 2004년 만든 ‘내일 다음날’(The Day After Tomorrow)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시대가 온다는 줄거리로 5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로는 기념비적인 특수 효과를 인정받았지만 역시 그가 만들어 올 11월 개봉한 ‘2012’년에 비하면 어린이 장난 수준이다. 이 영화는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6억6,000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뛰어난 특수 효과에도 불구, 줄거리의 뼈대가 되고 있는 재난의 과학적 근거는 극히 희박하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조류 변화가 일어나 빙하시대가 온다는 주장(내일 다음날)이나 워낙 작아 납덩어리 속을 수만 광년 날아가도 아무 입자와도 충돌하지 않는다는 중성미자가 지구 내부를 가열시킨다는 이론(2012)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이들 영화 관객 중 우주 현상의 과학적 원리를 배우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런 단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를 결정할 때는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와 이론이 필요하다.
월스트릿 저널은 최근 가장 권위 있는 기후 연구소의 하나인 이스트 앵글리아대 기후 연구소 관계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3,000개의 이메일을 분석해 기후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부풀리고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묵살해온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지구 온난화를 비판하는 학술지나 학자는 보이콧 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큰 비즈니스다. 1972년 세워진 이스트 앵글리아대 기후 연구소는 90년대 초까지 예산 부족으로 헉헉댔으나 1994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유엔 기후 변화 회의가 시작되며 연 3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연구 예산이 1,500만 달러로 늘어났다.
이곳과 함께 기후 변화의 연구의 중심지인 펜스테이트 대학의 경우도 기후 연구 예산이 2000년 2,000만 달러에서 2007년 5,500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미국의 유엔 기후 변화 정부간 위원회 지원금도 1989년 20만 달러에서 2000년 540만 달러로 폭증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이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이들의 연구 예산도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연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 연구 보고서는 2035년까지 히말라야의 모든 눈이 녹을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2350년의 오타라고 정정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 피해를 입을 대기업들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최대한 희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는 엄청난 이권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부분은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중 얼마만큼이 자연 현상이고 얼마만큼이 인간 때문인지, 오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탄소를 줄여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비용이 드는지, 지구 온난화가 계속될 때 얼마만한 피해가 올 것인지는 모두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다.
이번 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다. 덴마크는 지구 온난화 방지에 가장 열성적인 나라라는 이유로 행사 개최국이 됐지만 이 나라가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1위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면 할수록 비즈니스는 고비용을 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저성장과 고실업으로 이어진다. 어느 나라나 지구 온난화 방지에 앞장서고 싶어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자국 산업에 마이너스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내리는 결정 가운데 일방적으로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드물고 늘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야말로 불편한 진실이다. 코펜하겐 대회가 어떤 성명을 낼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것이 실천에 옮겨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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